오늘 에델만의 직원들에게 나의 후임으로 어떤 사장님이 올지 발표했다. 물론 내가 사장직을 곧 그만두겠다는 발표도 함께.
얼마 전 기자로 일하는 나의 가장 친한 친구에게 나의 계획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가 제안을 하나 했다. “이런 변화를 시도하는 나를 기자로서 인터뷰한다면 어떤 질문을 할래? 내 블로그를 위해 나를 한 번 인터뷰 해 줄래?”라고. 블로거로서 이러한 신상 변화에 대해 뭔가 글을 올리긴 해야 할텐데, 내가 뭐라 쓰려고 하니 좀 그렇고, 차라리 인터뷰 형식을 취하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을 했다.
대신 친구에게 인터뷰 원고의 최종 편집권은 건드리지 않겠다고 했다. 그리고는 지난 주말 인터뷰를 실시했다. 이 메일로 첫 인터뷰를 하고 또 만나서 대화를 나누는 식으로 진행이 되었다.
친구가 인터뷰를 시작할 때, 내게 한 말. “좀 심술 궂게 물어볼 거야… 난 너무 정중하고 판에 박은, '주례사 인터뷰'는 재미가 없거든...아주 솔직하고 재미나게 대답해야 해!" 인터뷰 내내 그 친구의 요청에 충실했다.
질문을 받고 답을 하며 “괜히 엉뚱한 짓 하는 거 아냐?”라고 생각했지만, 인터뷰를 마치고 나니 무언가 정리되는 느낌을 가졌다. 기자이기 전에 나의 친구이기에 인터뷰라기보다는 솔직한 대화로 흘렀다. 친구는 아래와 같이 정리해주었다.
마지막으로 기자 생활 바쁜걸 가장 잘 아는 '홍보 생활'하는 친구의 뻔뻔한 부탁을 위해 시간을 내어, 애정어린 질문 해주고, 이렇게 멋진 글 써 준 기자 친구에게 '애정어린' 깊은 감사 전한다.
- 도대체 왜 이런 변화를 결심하게 되었는지? '중년의 위기' 혹은 '지루한 일상으로부터의 탈출'?
“도대체”라는 표현이 좀 걸린다. 왜 이런 변화하면 안 되는가? 미안하다. 첫 대답부터 시비 걸어서.
‘중년의 위기’라… 내 나이 우리나이로 올해 마흔이니 중년은 중년이다. 그러나, 아직 중년이라는 생각을 솔직히 심각하게 해 보지는 않은 것 같다. 중년을 피하려고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오히려 철 없다고 할 수는 있겠지.
‘일상으로부터의 탈출?’ 그건 정확한 이유는 아니지만 ‘중년의 위기’보다는 훨씬 더 가깝다. 사실, 나이 서른에 직장 생활 늦게 시작해서 지금까지 10년째인데, 그 중 만 8년을 에델만에서 보냈다. 지금까지 내 커리어의 거의 전부라 할 수 있는 건데… 하지만 에델만에서 평생을 보낼 생각은, 나도 내 주위 사람도 하지 않았을 거라 본다.
내가 사장되었을 때(2004. 8), 만 서른 여섯이었다. 나로서는 큰 모험이기도 했다. 사람들이 사장되거나 높은데 오르면 “기쁘다기 보다는 어깨가 무겁다”라고 하는 거 모두 뻥 인줄 알았다. 그런데, 사장이 되고 보니 정말 어깨가 무거웠다.
사실 사장은 PR을 잘 한다고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인생에 대한 경험과 경륜이 있어야 하는 자리인데, 서른 여섯에 직원 개개인의 개성이 뚜렷한 프로페셔널 집단을 리드해가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그래서 사장이 될 즈음 시점부터 호주에 있는 개인 코치와 개인적으로 계약을 맺고는 리더십에 대한 코칭을 받아왔다(물론, 지금도 계속하고 있다).
사장이 되고 나서 첫 번째 Edelman Away Day(쉽게 말해서 ‘전직원 워크샵’)를 가서 신임사장으로서 앞으로 에델만을 어떻게 끌어갈 것인지를 발표했다. 내가 세운 비전은 ‘To be the most specialized PR firm in Korea’였는데, 보다 구체적으로 시점을 세우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에 ‘by FY 2007’이라고 적어 넣었다(FY는 회계연도를 말하는 것이고, 에델만에서 2007 회계연도는 2006년 7월부터 2007년 6월까지를 말한다).
왜 2007회계연도까지라고 적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사장으로 일한 지 3년이 되는 시점이고 우리 나이로 마흔이 되는 나이고, 에델만에서 직장 생활 시작한지 10년째이고… 뭐 이런 식으로 의미 붙여가며 2007년쯤 되서는 에델만에서 계속 일할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일을 할 것인지… 다시 살펴 보자…라고 생각했었다.
사장으로서의 생활은 PR회사의 AE나 부사장으로의 삶과는 많은 차이점이 있었다. 예를 들면, AE시절에는 내가 클라이언트를 만족시키면 되었지만, 사장으로서 나는 내가 아닌 에델만의 프로페셔널들이 클라이언트를 만족시키도록 만들어야 하는 것이었다.
미안하다. 말이 옆으로 새고… 길어져서. 나로서는 큰 변화를 앞두고 하는 인터뷰라 좀 생각이 길어지고, 과거를 자꾸 떠올리게 되는 것 같다…
어쨌든, 2002년 12월에 부사장으로 에델만에 복귀하고, 2004년 8월 사장이 되고 지금까지 4년 반 동안 열심히 일했다. 에델만 코리아는 2002년까지 에델만 네트워크에서 가장 작은 오피스 중에 손 꼽혔다. 그러나, 이제는 아태지역 15개 오피스 중 가장 큰 오피스로 성장했다.
그러나 잘 나가는 PR회사의 더군다나 사장이라는 타이틀과 좋은 실적이 ‘성공’이라는 라벨을 붙여주었는지는 모르지만, 내가 내 자신을 볼 때 ‘행복’이라는 라벨은 붙여주질 못했다. 적어도 한 일년 전까지는… 에델만에 있으면서 결혼도 했지만 이혼도 했다.
내 코치가 내게 준 커다란 화두는 ‘균형(balance)’이라는 것이었다. 그는 살면서 네 가지의 균형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일, 가족/친구와 시간을 보내는 것, 문화나 종교적인 삶, 그리고 나만의 놀이. 너무 한 쪽으로만 치우치지 않는 선에서 네 가지를 골고루 즐기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 때까지 내 삶에서 일은 80% 이상이었다…
코치의 ‘지시’에 따라 주말에는 회사를 나가지 않는 습관을 들였는데 막상 딱히 할 일이 없었다. 그러다가 일요일 아침은 부모님과 아침식사를 하기 시작했고, 1년 전 조지 나카시마의 전시회를 보고는 토요일이면 아침부터 목공소에 나가서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이렇게 변화를 하게 된 이유? 목공소에서 가구 만드는 일이 한 10% 정도는 영향을 끼쳤다고 본다. 사실 목공을 하기 전에는 내가 할 줄 아는 것과 즐기는 것이 PR밖에 없었다. 누가 나에게 “취미가 뭐냐?”라고 물으면 뭐 마땅한 답이 없었다. 목공소에서 가구를 만들며 세상에 PR말고도 재미있는 일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오히려 삶에 대해 더 배우게 되고 더 즐거워졌다. 성공이라는 아젠다에서 행복이라는 아젠다로 넘어가게 된 것이다. 행복은 일정 수준의 성공을 포함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무엇을 하면 가장 행복할까? 라는 것이 중심 질문이 되었다.
또 한가지. 현재 프레인의 사장을 맡고 있는
이 때부터 이 분과 1년에 한 두 차례 만나서 식사를 하며 긴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나로서는 하나의 의식이 되었는데, 언젠가 나에게 ‘삶의 하프타임’이야기를 들려준 적이 있다. 사람들이 60까지 정신 없이 일하다가는 은퇴하고 나서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하면서 후회한다는 것인데, 그 보다는 30-40대에 한 번은 하프타임으로 잠시 은퇴를 하고는 삶을 돌아보고, 그 다음에 다시 또 새로운 삶을 시작하라는 것이었다.
그 후 나도 어떻게 하면 하프타임을 잘 가질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쭈욱 해왔다. 언젠가 한 잡지와 인터뷰를 하면서 에델만 이후에는 6개월에서 1년 정도 쉬면서 무언가 창조적인 일을 하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당시에는 요리학교를 다닐까 생각했는데, 이제는 목공소에서 가구를 만드는 일이 될 것 같다.
마지막으로 직업적인 이유도 빼 놓을 수 없을 것 같다. 블로그로 대표되는 개인 미디어, 그리고 이로 인한 여론이나 기업에 대한 명성이 형성되는 과정이 급격한 변화를 겪게 될 것이라 보게 되었다.
특히 위기관리를 하는 입장에서 향후 이러한 미디어와 이로 인한 사회 변화가 위기관리의 패러다임도 바꿀 것이라는 위기감이 들었다. 이에 대한 연구를 해보고 싶은데, 사장직을 하면서 연구를 한다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래서 연구를 위한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사장직을 그만 두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했다.
또 하나는 코칭이다. 내가 AE시절, 아태지역 회장을 했던 데이비드 차드. 그도 에델만을 떠났다가 다시 복귀하여 현재 에델만 타이완 오피스의 회장 겸 에델만 아태지역의 인력개발(people development) 총책임자로 있다.
그와 한 제약회사의 프리젠테이션을 위해 싱가포르에서 만나서 오랜만에 맥주를 즐기다가, 코칭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는 뭔가 뻥 맞은 듯한 느낌이 들었었다. 98년부터 학교에서 강의도 했지만 전통적인 수업이나 트레이닝 방식과는 완전히 패러다임이 다른 코칭의 마력에 빠져들었다.
데이비드 차드와 이야기를 나눈 2003년부터 위기관리에 이러한 방식을 접목하여 매년 많은 CEO나 임원진들을 위한 개별 코칭이나 워크샵을 진행했다. 이로 인해 회사에 돈도 많이 벌어다 주었지만, 무엇보다도 이런 코칭을 하는 순간은 클라이언트의 피드백도 좋을 뿐 아니라 내가 행복했다.
그러나 사장직을 하면서 이러한 코칭에만 빠져들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보통 한 번 코칭을 하면 준비시간을 빼고도 4시간이 걸리는데, 사장으로서 회사 경영 업무에 적어도 60-70% 이상의 시간을 쏟아야 한다. 연 기준으로 적어도 100시간 이상은 코칭이나 트레이닝을 해 왔지만 좀더 전문적으로 도전해보고 싶었다. (또 하나 덧붙인다면, 사장으로서 나보다 더 잘할 수 있는 사람은 많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위기관리라는 분야, 그리고 코칭을 통해 조직의 위기관리 능력을 키워주는 분야에서는 일등이 되고 싶은 욕망이 더 컸다…)
- 모든 직장인들이 막연히 전직이나 이직 혹은 퇴직을 꿈꾸면서 막상 그 정확한 시기가 언제일지 고민한다. 지금이 바로 변화가 필요한 그 때임을 도대체 어떻게 알 수 있었나? (제발 그냥 그런 느낌이 들었다는 식으로 대답하지 말기를...)
J 글쎄… 나의 경우에 변화라는 것은 예상했던 것이고, 다만 시점이 문제였었는데… 2004년 미국 LA에서 열렸던 에델만 사장단 회의 때, We the media를 쓴 기자 출신 댄 길모어(Dan Gillmor)가 와서 시민 저널리즘이라는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했을 때만해도 그리고 위키피디아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에도 나는 그저 흥미로운 현상으로 보고 있었다.
2006년 6월 워싱턴에서 열린 에델만 전세계 사장단 모임에 갔을 때 패널들이 나와서 뉴미디어에 대한 토론을 할 때, 역시 패널 중의 한 사람이었던 댄 길모어에게 나는 완벽하지도 않은 영어로 개인 미디어와 위기관리의 관계에 대해 질문을 하고 있었다…
그만큼 그 문제가 나에게 중요한 아젠다로 느껴졌고, 집중적으로 연구해야 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환경의 변화보다는 그 변화의 필요성을 내가 얼마만큼 몸으로 느끼는가… 그게 바로 전직이나 이직이 필요한 때임을 알려주는 신호라 생각한다…
그래서 2006년 11월, 내 보스인 밥 피커드 북아시아 사장에게 2007년 회계연도가 끝나는 6월까지 열심히 일하고 회사를 떠나겠다고 했다… 여기에서 내게 중요한 것 한 가지만 이야기하자. 내가 사장이 되기 전 6개월 정도 전부터 본격적으로 succession planning을 했다. 내 보스와 여러 가지를 상의해가며 ‘승계’를 준비한 것이다.
GE는 수년 이상을 이런 succession planning을 한다고 들었지만, 우리와 같은 조직에서 6개월은 매우 긴 기간이다. 난 이게 참 멋져 보였다. 내가 회사를 떠날 때도 한 두 달 전에 사표내기보다는 긴 시간을 두고 에델만이 더 좋은 후임자를 물색하고, 그에 따라 이 조직을 더 좋게 만들 수 있는 준비기간을 주고 싶었다.
그래서 반년이 넘는 기간을 앞두고 사표를 냈고 그 후 최고의 신임사장을 찾기 위해 내 보스와 일해왔고, 또 그런 분을 찾았다. 사장을 찾는다는 게 금방 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 직원과 고객들에게 나의 사임을 발표하는 동시에 내 후임자 – 더 많은 경험과 경륜을 갖고 있는 –를 함께 발표해서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그 분과 한 달간 같이 일하며 집중적으로 도울 것이다.
- 에델만코리아의 한국 대표라는 타이틀에 있어 가장 좋았던 점과 가장 고역이었던 점은?
가장 좋았던 점이라… 5년도 넘은 일인데… PR이론의 아버지라고 할 만한 제임스 그루닉 교수가 방한하여 이대에서 강연을 할 때 갔었던 적이 있다. 강의 말미 질의 응답시간에 아마도 첫 질문자로 “당신의 excellent theory는 일반 기업에 있어서 PR 우수성을 설명하고 있는 것 같은데, PR firm에 있어서 우수성을 알려주는 지표에 대한 연구나 혹 당신의 의견이 있다면 무엇인가?”라고 질문했었다…
그만큼 일하는 사람도 신나고 성과도 훌륭한 PR회사를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 생각을 가졌기에 에델만의 사장이 되었을 때 희망을 현실로 만들어 볼 수 있겠다 싶어 좋았다.
또한 사장이라는 타이틀, 그것도 요즘 제일 잘 나가는 PR컨설팅사의 사장이라는 타이틀은 보다 잘 나가는 사람과 접촉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한다. 단지 높은 사람이 아니라 자기 나름의 성공을 일구어낸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로부터 무언가 배울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고역이라… 난 PR회사, 특히 에델만에서 인턴으로 시작해서 사원, 대리, 과장, 차장, 부장…으로 커 온 사람이다. 직원 시절에는 누구나 그렇듯 사장이나 상사 욕도 했고, 일이 끝나면 동료들과 함께 회식도 하곤 했고, 그게 즐거웠다.
그러나 사장이 되면 일단 직원들과 일정 부분 벽이 생기게 마련이다. 나는 그들의 성과를 평가하고 월급을 결정하는 사람인데, 어느 직원이 완전히 허심탄회할 수 있겠나. 그게 때때로 싫었다. Lonely at the top이라는 이야기가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직원들 앞에서 농담을 할 때 직원들이 웃는다고 해서 정말 내가 웃겼다고 생각하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