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가지 비굴장면?:)

hoh's halftime 2007/08/09 09:52 Posted by 김호
가끔씩 PR분야로 진출하려는 사람들로부터 상담요청을 받는다. 어제도 수업으로 만났던 학생 셋과 점심식사를 하며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집으로 돌아오며 "나도 그런 때가 있었지..."하며 옛날 생각을 하곤 혼자 웃었다. 몇 가지 떠올랐던 장면:

1. 1995년 겨울 방학. 미국 유학 중, 한국에 나와 당시 여의도에 있었던 BM에 인턴쉽을 위한 인터뷰를 했다. 1996년 여름방학동안의 인턴쉽을 위한 것이었고, 다행히 합격했다.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 공부하면서, 여름방학 인턴을 고대하고 있을 때, 한 달을 채 안 남겨두고, BM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Merit Communications라는 곳과 합병을 하게 되어, 사무실을 합치고 나니, 인턴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왠 날 벼락... 난 비굴 모드로 이야기했다. "전 바닥에 신문지 깔고도 일할 수 있는데요..." 그러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2. 수원대학교의 최윤희 교수님께서 나의 사정을 듣고, 커뮤니케이션즈 코리아의 김경해 사장님께 소개를 해주셨다. 김 사장님께서는 흔쾌히 인턴쉽을 받아주셨다. 감사.

3. 그런데, 불과 며칠 후에, 나를 95년 겨울방학 때, 인터뷰했던 BM의 상무님이 전화를 주셔서, 에델만이란 곳이 마침 한국에 진출했는데, 그 곳에 추천을 해 놓았으니, 가보라는 연락을 받았다 (반갑게도 그 상무님께서 작년에 전화를 주셔서 한 번 만나뵙고, 저녁식사를 함께 했다). 교과서에서 보던 에델만이라는 이름에 꼴딱 넘어가서, 이 곳으로 결정을 하고는, 김경해 사장님께 양해를 구했다. 그 때, 먼저 인턴쉽 기회를 주신 김경해 사장님께 결정을 바꾼 것은 지금까지도 송구스럽게 생각한다. 그런 인연으로, 그 해 여름에 나와서, 김경해 사장님을 처음 뵙고, 점심을 함께 한 뒤로는, 매 년은 찾아뵙지 못해도, 어쩌다가 불쑥 전화드려서 찾아뵙고, 식사를 하는 편이다. 만나뵐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늘 여유로운 웃음이 따뜻하게 느껴진다. 대한민국의 1세대 PR인으로서, 후배들에게 새로운 분야에 대한 길을 터 주시고, 당신의 경험을 여러권의 책으로 엮어서 나누어 주신 작업들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를 드리고 싶다. 앞으로도 늘 건강하고 행복하시길.

4. 97년 말 ~ 98년 1월이었나보다. 외환위기가 닥치자, 수업료는 2배로 올랐고, 실무에 대한 갈증도 느끼던 차에 휴학을 하기로 하고, 한국에 있는 PR분야에 지원하기 시작했다. 대 기업(제일기획과 LG그룹 홍보분야로 이력서를 제출했던 것으로 기억한다)에도 지원을 했으나, 소식은 없었고, Access Communication에는 전화로 간략한 인터뷰도 했다. 당시 Access에 계시던 한 분께서는 "아무래도 나이도 있는데, 실무 경험이 뚜렸이 없어서..."라고 절망적인:) 말씀을 해 주셨다. 그러던 차에, 인턴을 했던 에델만의 이태하 사장님이 내게 돌아와서 일하자고 해주셨다. 그렇게 하여, 에델만과의 인연은 시작되었다. 얼마 전, 오랫만에 이태하 사장님과 점심 식사를 함께 했다. 요즘은 PR과 관련된 그러나, 또 다른 새로운 분야의 일을 시작하셨다고 한다. 옛날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이 자리를 빌어, 내게 커리어의 시작 발판을 마련해주셨던 이태하 사장님께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다.

5. 1996년 여름 인턴 시절, 비달 사순의 해외 스타일리스트들이 한국에 왔을 때, 나는 함께 부산과 대구를 돌아다니며 보조일을 했다. 당시 김포공항에 스타일리스트 마중을 나갔는데, 키도 크지 않았던 한 스타일리스트가 가져온 '도구 가방'을 보고 거의 질겁을 했다. 사람 둘은 들어갈 수 있는 철제 케이스였기 때문이었다. 당연히, 이를 컨베이어 벨트에 싣는 일이 나의 임무였다. 이를 바로 싣고서 부산으로 떠났는데, 부산까지 갔다가 기후 상황 때문에 다시 김포로 돌아왔다. 그 때, 김포공항에서 나오는 안내말에 나는 또다시 질겁해야 했다. "부산에서 다시 김포로 돌아오신 승객께서는 짐을 찾으셔서, 수속을 다시 해주시기 바랍니다..."

부산과 대구에 가서 나의 임무는 미장원에서 염색을 하는 외국 스타일리스트를 보조하고, 그 들이 쓴 100여장에 가까운 타올들을 모아다가 저녁에는 세탁방에 가서 빨아오는 일이었다...

그 때, 인턴을 하면서, "아... 그래도 장교 출신인데, 이런 일을 해야 하는 것인가...?" 혹은 "PR은 몸으로 때우는 것인가?:)"라는 자조섞인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는, 에델만에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98년 AE로 다시 들어왔다. 2001년 에델만을 떠날 때, "이젠, 정말 에델만에 올 일은 없을거야..."라고 생각했는데, 왠 걸, 2002년 나는 다시 돌아왔다. 결국, 인턴을 포함, 에델만에는 세 번 들어갔다.


이 밖에도 PR을 하며, 여러 '비굴모드'가 있었다. 그 때는 힘들었지만,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웃음이 나오고, 그 때, 그런 고생할 수 있었던 것을 감사하게 생각한다.

나이가 드는 것일까. 자꾸 과거를 떠올리고, 많은 것이 감사하게 느껴지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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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추억속의 비굴장면들...

    Tracked from Communications as Ikor  삭제

    호 선배의 '비굴장면'이라는 글을 읽고 오늘 아침에 혼자 실실 웃었다. 지나고나면 다 추억이지만 당시에는 말그래도 '죽고싶다'거나 '숨고싶은' 그런 슬픈 사건들이었다. 호 선배 말대로 늙은거다...그러니 이런 기억들에 미소를 지을수 있지...내 커리어 최악의 비굴 장면들...#1. 내가 알아서 줄테니 이해하세요일시: 90년대 후반 겨울 어떤날 (추었다)장소: 커뮤니케이션즈 코리아 연지동 사무실, 사장실 안등장인물: 김경해 사장, 나당시...

    2007/08/10 15:14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정용민  수정/삭제  댓글쓰기

    하하하하...선배가 타올을 빨러 가는 모습이 그려집니다. 재미있네요 이거...저도 나름 비굴 장면들이 (잊고 싶은...)떠오릅니다. 한번 정리해 봐야죠...비굴 스토리들...감사!

    2007/08/09 10:36
    • 김호  수정/삭제

      지금이니까, 웃으면서 이야기할 수 있지, 그 땐 정말 죽겠더라구...:)

      2007/08/09 10:51
  2. zy chae  수정/삭제  댓글쓰기

    2002년인가 2004년에 이대에서 특강 해주셨을 때 '학생들 중에 무임금도 좋으니 에델만에서 일하게 해주십시오라고 부탁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말씀을 하셨었는데, 호 코치님 자신도 '전 바닥에 신문지 깔고도 일할 수 있는데요'라고 말했었던 내공이 있으셨군요 :)

    2007/08/09 10:42
    • 김호  수정/삭제

      그렇지요. 차라리 무임금이 낫지:) 그 땐 정말 비굴했었다우...

      2007/08/09 10:52
  3. Dancing conan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런때가 있으셨군요 ㅎㅎ 저도 저의 과거가 떠오르네요. 이런 비굴스토리에 오히려 힘이 솟습니다 호호

    2007/08/10 10:29
    • 김호  수정/삭제

      사람마다 겪는 힘든 과거는 때론 즐거운 추억으로 남기도 하지요. 그러나, 살다보면, 비굴하고, 또 '추한' 모습을 보일 때가 있는 것이 사람의 삶이 아닌가 싶습니다. 군대에서 훈련 받을 때, 취사병의 '국자질'에 따라 내 트레이에 담기는 고깃덩이 수가 변하고, 그에 따라 나의 하루 기분이 왔다갔다하는 추억은 지금은 즐겁게 생각하나, 당시는 참 '추했다'는 생각이 드네요:)

      2007/08/10 10:55
  4. Jace  수정/삭제  댓글쓰기

    너무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호사장님의 이러한 솔직함이 저는 참 좋습니다!!

    2007/08/11 16:22
    • Hoh  수정/삭제

      비굴모드 --> 솔직함으로 되는 장점도 있군요:) 감사.

      2007/08/12 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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