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 뉴스, 뱃 뉴스

김호의 쿨 커뮤니케이션 2009/03/11 12:55 Posted by 김호
* 한 동안 포스팅을 하지 못했네요. 얼마전 제가 다니고 있는 KAIST의 문화기술대학원의 뉴스레터편집팀으로부터 사색이라는 코너의 칼럼을 써달라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지난 2월, 어느 저녁 술 한잔 마시고 쓴 글입니다:) 기고 칼럼을 여기에 옮깁니다.


굿 뉴스, 뱃 뉴스

살다 보면 굿(good) 뉴스도 뱃(bad) 뉴스도 겪게 된다. 누구의 인생에도 굿 뉴스만, 혹은 뱃 뉴스만 있는 경우는 없다. 2004년은 내게 잊지 못할 한 해이다. 그 해에는 내게 커다란 굿 뉴스 하나, 그리고 뱃 뉴스 하나가 있었다.

먼저 굿 뉴스. 2004년 초반 당시 부사장으로 근무하고 있던 컨설팅사에서 나는 사장으로 승진할 것이라는 통보를 받았다. 그리고 6개월간 사장 수업을 받아, 그 해 취임했다. 1996년 석사 과정 중 써머 인턴으로 시작했던 회사에서 승진을 거듭하여 사장까지 되었으니 커리어로 놓고 보면 꿈만 같은 굿 뉴스였다.

그리고 만만치 않은 뱃 뉴스. 난 당시 이러한 굿 뉴스를 마냥 기쁘게만 받아들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개인적으로 5년간의 결혼 생활을 마무리하고 이혼 수속을 밟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합의 이혼이었건만 그래도 그 스트레스는 워낙 커서 본사에 사장 취임을 몇 개월간 늦춰달라고 요청까지 할 정도였다. 하지만, 회사 사정상 예정대로 8월에 사장에 취임하고, 결국 난 11월 초 이혼 절차를 마무리했다.

사장이 되었다는 뉴스는 업계 내에 빠르게 퍼져갔고 많은 축하와 격려를 받았다. 문제는 이혼이라는 뱃 뉴스를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것이었다. 매주 월요일 아침이면 직원들이 "주말 잘 보내셨어요?"라고 물어볼 때 혹은 '와이프'의 안부를 묻게 되면 나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 것인가? 나는 딜레마에 빠졌다. 그냥 잘 있다라고 이야기하게 되면 거짓말을 하게 되는 것이 불편했고, 그렇다고 이혼했다고 말하게 되면 상대방이 오히려 당황해 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 때 나에게 해법을 준 것은 나의 컨설팅 방법론이었다. 나는 10여 년 동안 기업의 위기관리 컨설팅을 해왔는데, 실수나 잘못을 저지른 기업들이 뱃 뉴스를 어떻게 커뮤니케이션할 것인가? 라는 문제를 풀어주는 것이 나의 주 영역이었다. 위기 관리에서 뱃 뉴스는 기본적으로 내 입으로 먼저 이야기하는 것이 가장 좋다. 그래서 영국의 쉘(Shell)社에서 쓰기 시작한 '투명성의 패러독스(paradox of transparency)'란 개념은 결국 뱃 뉴스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이 오히려 당사자에게 유리하다는 것에서 나온 것이었다.

여러분은 그런 경험하지 않았는가? 고등학교 시절 조회시간에 담임 선생님께서 4교시 끝날 때까지 도시락 까먹지 말라고 주의를 준다. 하지만 배고픈 나는 2교시 끝나고 까먹었다. 3교시가 끝났을 때 담임 선생님께서 교실에 들어오신다. 도시락 먼저 까먹은 놈들 자수하라고 한다. 난 버틴다. 아무도 손을 안 들자 선생님께서는 전부 도시락 뚜껑 까보라고 시킨다. 제길. 별 수 있나. 난 걸렸다. 어떻게 되나? 먼저 자수하면 엉덩이 다섯 대 맞을 걸, 이쯤 되면 따귀를 열 대 맞는다. 쉽게 말하자면 이게 투명성의 패러독스이다. 정치자금 받은 우리나라의 정치인들은 절대로 따르지 않는다는: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는 말이 있지만, 그 때 나는 내 머리를 깎기로 했다. 당시 이혼하자마자 새 출발도 할 겸 회사에서 걸어 다닐 수 있는 곳에 제법 괜찮은 오피스텔을 얻어 이사를 했다. 그리고는 전 직원을 초대했다. 집들이로 말이다. 파티를 하게 되니 집에 와서 혼자서 지지고 볶는 나를 보게 된 직원들은 자연스럽게 나의 이혼 사실을 알게 되었고, 나의 사정을 잘 이해해주었다. 그리고, 나의 이혼 사실은 자연스럽게 주위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되었고 난 좀 더 맘 편하게 살 수 있게 되었다. 기업과 마찬가지로 개인도 굿 뉴스는 남들이 이야기해주는 것(word of mouth)이 최고이고, 뱃 뉴스는 자기 입으로 먼저 말하는 것이 좋다.

굿 뉴스나 뱃 뉴스는 때로 서로 위치를 바꾸기도 한다. 단일 PR컨설팅사로는 세계에서 가장 크다는 곳에서 서른 여섯의 나이에 사장이 되고, 회사를 떠날 때까지 매년 최고의 매출을 갱신하는 기쁨도 맛보았다. 30대 후반에 오면서 내 삶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나의 30대 10년은 주말도 없이 달려온 숨가쁜 여정이었다. 그리고, 나의 결론은 "성공 있다. 벗(but), 행복 없다"로 내려졌다. 행복하지 않다면 그건 결국 성공도 아니다.

그 즈음 위기관리의 기술이란 결국 사과의 기술(art of apology)이란 나름의 직업적 깨달음을 갖게 되었다. 정부나 기업들이 잘못을 저지르고 은폐하다가 더 악화시키는 것은 사과의 힘과 기술을 모르기 때문이다. 30대 중반에 <로레알 여성 과학자상> 프로젝트를 통해 만나게 된 정재승 교수님은 내게 문화기술대학원의 존재를 알려준 분이다. 학부에서는 인문학인 불어와 철학을, 석사에서는 사회과학인 커뮤니케이션을, 그리고 이젠 정 교수님의 지도로 카이스트에서 사과에 대한 공학적 탐구를 하고 있다.

결국 내 삶의 굿 뉴스와 뱃 뉴스는 서로 자리를 바꾸어가며 나를 이 곳에 가져다 놓았다. 공기 맑은 대전에서 다른 곳에서는 만나보기 힘들 다양한 교수님, 동료 학생들과 함께 공부하고 있으니 감사하고 행복하다. 더 이상 많은 연봉은 없지만, 그래도 내 사업을 하며, 공부를 하고, 때론 '술 고픈' 후배들에게 얼마든지 폭탄주 사줄 정도의 돈은 있으니 크게 부러운 건 없다. 게다가 '지방대생:)'인 나를 항상 믿고 따라주는 여자친구가 있으니 감사할 뿐이다. 그래서 문화기술대학원은 여러 가지로 내 인생 최고의 굿 뉴스 중 하나이다.

앞으로도 굿 뉴스도 뱃 뉴스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인생은 재미있다. 바램이 있다면 굿 뉴스에 교만하지 말고, 뱃 뉴스에 철퍽 주저앉지 말기를 기도할 뿐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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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Jamie의 생각

    Tracked from jamieblog's me2DAY  삭제

    위기 속에서 진실성을 지키고 따르기 - 김호님의 포스팅을 읽고 :)

    2009/03/14 14:56
  2. 미니승민의 생각

    Tracked from miniday's me2DAY  삭제

    인생의 점들을 이어보는 것은 나중에 알게된다 좋아하는 선생님의 포스트를 읽고 끄덕끄덕- 길게 보면 인생에서 굿뉴스와 배드 뉴스는 큰 차이가 없는지도 모른다. 달콤함도 고단함도 그 시간이 지나면 여운과 교훈이 남는다.

    2009/03/18 11:20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정윤호  수정/삭제  댓글쓰기

    항상 많이 배웁니다. 간만에 포스팅도 너무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2009/03/12 16:31
    • Hoh  수정/삭제

      반가운 윤호님. 잘 지내시지요? 봐야하는데...:)

      2009/03/13 06:40
  2. AndyShin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같이 30대를 시작하는 사람들이 꼭 한번은 읽어봐야할 글이군요..:) 감사합니다.

    2009/03/12 17:21
    • Hoh  수정/삭제

      감사합니다. 황금기를 시작하시는군요!

      2009/03/13 06:40
  3. 정용민  수정/삭제  댓글쓰기

    거봐요. 술한잔 하시고 글을 쓰시니까...촉촉하네. 계속 술한잔 하신 글 기대합니다. :):)

    2009/03/13 09:40
  4. 지나가다~  수정/삭제  댓글쓰기

    눈팅만 하다가 좋은글에 감사인사 드려요~
    그래도 개인적으로 "성공 있다. 벗(but), 행복 없다" 상태도 한번 되어 보고 싶다는^^;
    계속 잘 지켜 보고 있을께요~

    2009/03/13 17:04
    • Hoh  수정/삭제

      감사합니다. 행복과 성공 모두 가져가셔야지요~

      2009/03/13 17:54
  5. Jamie  수정/삭제  댓글쓰기

    매번 김호님 포스팅을 읽고 있는데 이 글의 댓글을 달지 않을 수 없어서 남깁니다. 늘 위기관리의 투명성이 항상 최선일까 고민을 했었는데 글을 읽고 시원한 조언 얻었습니다. 유용한 경험을 블로그에 공유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2009/03/14 14:54
    • Hoh  수정/삭제

      감사합니다.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이네요. 늘 행복하세요.

      2009/03/14 19:22
  6. Emily  수정/삭제  댓글쓰기

    흘러가고 있는 저의 30대를 돌아보게 하시네요.. 행복한 호사장님의 40대 굿뉴스와 뱃뉴스 모두.. 항상 응원하겠습니다. 화이링~ ^^

    2009/03/14 17:26
    • Hoh  수정/삭제

      30대를 멋지게 즐기시길요. 응원. 제가 아주 좋아하는 단어입니다. 저도 Emily님의 멋진 30대를 위해 응원의 박수 보냅니다.

      2009/03/14 19:22
  7. 이랑  수정/삭제  댓글쓰기

    첫수업시간 그래프를 그리시며 선생님 이야기를 storytelling 해주셨던 것이 생각났어요! 4학년의 압박으로 힘들어하던 저에게 참 많은 생각을 안겨준 너무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때 선생님 표정까지도 아주 생생하다는!! ㅋㅋ 선생님, 드디어 봄이 찾아왔어요! 이제 곧 꽃도 필텐데 더욱 멋진 봄날 되시길 기도드릴게요! 그리고, 선생님 곁에는 선생님을 응원하고 한없이 감사하고 있는 저희들이 있다는거 꼭 기억해주세요:)

    2009/03/15 00:00
    • 김호  수정/삭제

      오랫만이다. 이랑. 함께 수업 시작하던 때가 어느새 1년이 되어가는구나. 그래, 그래프의 고저처럼 우리 삶도 좋은 때와 힘든 때가 있는 법인것 같다. 응원해주어 고맙고, 나도 이랑의 새로운 출발을 위해 응원할께!

      2009/03/15 19:00
  8. 이승민  수정/삭제  댓글쓰기

    긴긴 인생에서 정답은 없다는 것을 자꾸만 깨닫는 요즘입니다.
    무엇이 굿 뉴스인지,뱃 뉴스인지는 시간이 지난 뒤에 알게 되겠지요?

    이런 멋진 글을 뉴스 레터로 만날 수 있는 학생들도 참 럭키한 분들 일듯:)

    2009/03/16 23:19
    • Hoh  수정/삭제

      네. 몇 년전 Steve Jobs가 Stanford 졸업식에서 인생의 점들을 이어보는 것은 나중에 알게 된다는 말을 했는데, 그게 여기에 맞겠네요.

      2009/03/17 21:51
  9. 시연  수정/삭제  댓글쓰기

    은근슬쩍 여자친구분 자랑으로 마무리를 하신다는 ㅋㅋㅋ

    에이... 쩝쩝 ㅋㅋㅋ

    2009/03/17 00:54
    • Hoh  수정/삭제

      :) 시연이의 표정이 떠오르네:) 잘 지내지?

      2009/03/17 21:52
  10. prsong  수정/삭제  댓글쓰기

    마음으로 쓴 메시지는 마음에 가 닿는다..
    이 포스팅을 통해 또 한번 곱씹은 문구입니다.

    :)

    2009/03/17 15:20
    • Hoh  수정/삭제

      그리고 때론 술이 마음을 열게 해주는 듯 합니다:)

      2009/03/17 21:52
  11. 박종선  수정/삭제  댓글쓰기

    호사장님!
    당신의 글을 읽으면서 아직은 미흡하지만 그 당시 고민하던 모습을 생각합니다.
    저는 중문과를 나와서 그런지 이런 말이 생각납니다. 새옹지마!
    눈에 보이는 것이 좋을 지 몰라도 금방 새로운 변화를 맞이한다는 말 말입니다.
    그 순간은 아플 지 몰라도 나중은 아마도 새로운 결론을 낼 것이라는 말입니다.
    위기관리차원에서 보면 위험과 기회라는 두가지 측면을 굿뉴스와 배드뉴스로
    표현한 당신의 글 속에서 새로운 생각을 하게 됩니다. 오늘의 현상을 보면서 그 순간
    슬퍼하지도 너무 즐거워 하지도 마시기를 바랍니다.
    인생은 새옹지마! 그러나 늘 미래는 아름다운 것입니다. 오늘보다는 내일을 보고
    내일보다는 더 나은 미래를 바라보는 것이 바로 비전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신의 삶속의 철학이 바로 우리들이 논의할 내용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대가 아끼는
    그분(?)과 같이 와인한잔하면서 이야기를 나눌 수있기를 고대합니다. 사랑합니다.

    2009/03/25 03:13
    • Hoh  수정/삭제

      박 사장님. 감사합니다. 네. 인생은 새옹지마인것 같습니다. 항상 미래의 새로움을 보고 나가야지요. 함께 해주시는 박 사장님같은 분이 있어 얼마나 든든한지요!

      2009/03/26 10:41
  12. 보리  수정/삭제  댓글쓰기

    중 제 머리 못 깎듯, 배운 것을 스스로의 경우에 적용하기가 쉽지 않은데
    배드 뉴스를 그렇게 알리신 것에 놀랄 따름입니다.

    위기관리는 결국 사과의 기술이다.. 멋진 통찰, 감사합니다. ^^
    항상 유익한 포스팅의 수혜를 받고 갑니다.

    2009/04/08 13:01
    • Hoh  수정/삭제

      격려의 말씀 감사합니다. 오늘 햇살이 너무 좋네요. 즐거운 오후 되시길요.

      2009/04/08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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