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수자 서문)
사과: ‘약자의 언어’에서 ‘리더의 언어’로
김 호/정재승
“지금도 나는 어머니가 강조한 간단한 원칙. 즉 ‘네게 그렇게 하면 기분이 어떨 것 같니?’를 정치활동의 길잡이 중 하나로 삼고 있다. 나는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는 것은 아무리 자주 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생각한다. 국가 전체를 놓고 볼 때, 우리는 상대편의 처지에서 생각해보는 마음이 부족한 것 같다.” (오바마)
간단한 실험 하나를 해보자. 네이버의 뉴스 검색 사이트(news.search.naver.com)에 들어가서, 역대 대통령 이름과 함께 ‘사과’라는 단어를 넣어 키워드로 입력한 뒤 검색된 결과를 살펴보자. 그러면 다음과 같은 결과를 얻게 된다: ‘박정희 사과’(2,787); ‘전두환 사과’(2,029); ’노태우 사과‘(1,127); ’김영삼 사과‘(2,020); ’김대중 사과‘(7,664); ’노무현 사과‘(27,728)...이 결과는 우리에게 대한민국에서 1990년 이전에는 ’대통령의 사과‘를 상상하기 힘들었지만,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를 거치면서 대통령이 사과를 하고 대통령에게 사과를 요구하는 문화가 급속도로 증가됐음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미국의 경우는 어떨까? 구글의 뉴스 검색 사이트(news.google.com)에서 미국 대통령 이름과 함께 ‘사과’를 입력해 보면 결과는 유사하다: 'Nixon apology'(153); ‘Reagan apology'(704); 'Bush apology'(3,336), 'Clinton apology'(783). (이 중 부시 대통령의 경우에는 아버지와 아들 부시가 모두 검색되었을 것이다.) 옛 대통령에 대한 보관된 문서의 양이 적은 것도 한 몫을 했겠지만, 미국에서도 역시 ’대통령과 사과‘에 관한 기록이 근래에 와서 크게 증가했음을 할 수 있다.
현직 대통령에 대한 사과 관련 검색을 해 보면, 이러한 특징은 더욱 확연히 알 수 있다. 2009년 현재 한국과 미국의 대통령으로 각각 검색해보면, ‘이명박 사과’는 무려 26,783건이, ‘Obama apology'는 12,967건이 검색된다. 이명박 대통령은 2008년에, 오바마는 2009년에 취임했으니, 재임기간이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검색 결과 중에는 야당이나 시민단체에서 ‘사과를 요구’한 경우도 있을 테고, 직접 사과를 하거나 언급한 경우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간단한 인터넷 검색이 우리에게 일러주는 것은 권위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대통령에게마저도 ‘사과’에 대한 논의가 최근에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대통령만 그럴까? 또 다른 결과를 보자.이 책의 저자인 아론 라자르에 따르면, 미국의 대표적인 언론인 뉴욕 타임스와 워싱턴 포스트에서 사과(apology)와 사과하다(apologize)를 검색해보면, 1990-1994년에는 1,193건이던 것이 1998-2002년 사이에는 2,003건으로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한국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중앙일보에서 기사 검색을 한 결과, 1990-1994년 사이 ‘사과하다’ 혹은 ‘공개 사과’로 검색되는 기사는 단 한 건도 없었다. 하지만 1998-2002년 사이에는 ‘공개 사과’가 1,200여건, ‘사과하다’가 9천여 건을 검색할 수 있었다.
더 나아가 ‘대국민 사과‘를 놓고 검색해보면, IMF위기 이전에는 검색되지 않는다가, 2001년 이전에는 연 평균 10건 미만이었던 것이, 2002-2008년에는 연평균 2백건 이상 검색된다. 라자르에 따르면, 사과에 대한 연구가 처음 발견되는 것은 1970년에 들어와서이며, 구체적인 방법론이나 본격적인 연구는 1990년대에 들어와서 라고 한다.
21세기에 들어와서, 한국과 미국을 포함해 전세계적으로 ‘사과에 대한 논의’가 늘어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중에서도 정치인이나 기업인, 연예인 등 사회적으로 파워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공적인 사과(public apology)가 늘어나고 있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사과에 대한 연구를 통해 정신질환을 치료하고 있는 의사이자 컨설턴트인 아론 라자르는 이 책에서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이 흥미로운 질문을 세상에 내놓으며 자신만의 독창적인 해답을 제시한다. 이 책에서 밝히고 있는 해답과 감수자들이 현재 진행하고 있는 사과에 대한 신경과학적 연구 결과를 합쳐보면, 크게 세 가지 정도로 그 해답을 요약할 수 있다.
첫째는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소비자와 일반 국민의 힘이 크게 증가했다는데 그 원인이 있다. 과거에는 소비자나 일반 국민이 정부나 기업에 비해 약자여서 일방적으로 당하였다면, 이제는 시민단체 활동, 소비자 운동 등을 통해 ‘파워 그룹’에게 원하는 바를 요구하고, 비판하는 경우가 더욱 많아졌다. 점차 민주사회와 평등 사회로 갈수록 일반 시민의 파워는 커져가게 돼 있고, 이런 흐름 속에서 정부나 기업의 리더들은 과거 사과하지 않고 넘어갈 일도 공개적으로 사과를 해야 하는 경우를 맞게 된다.
둘째,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요구나 압력이 매우 커졌다는 사실이다. 과거에는 이익만을 추구하던 기업이 이제는 환경, 노동, 사회 소외층 등 사회적 이슈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다. 따라서 과거에는 ‘잘못’이 아니었던 이슈들이 이제는 ‘잘못’이 되기도 하고, 사과하지 않고 얼렁뚱땅 넘어갈 수 있었던 점들이 이제는 사과를 해야 넘어갈 수 있는 상황으로 변하고 있다.
예를 들어 환경오염의 이슈에 휘말린 기업은 대국민 사과는 물론, 그에 대한 배상의 책임까지 엄격하게 요구받고 있다. 이러한 압력은 사회적으로 투명성이 증가하고 있는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리더십의 대가인 미국 남가주대학(USC)의 워렌 베니스(Warren Bennis)와 ‘감성 지능’으로 유명한 데니엘 골만(Daniel Goleman)은 현재 리더십에 있어 가장 중요한 이슈가 ‘투명성’임을 간파하고, 2008년에는 『투명성』(Transparency)이란 책을 펴내기도 했을 정도다.
마지막으로, 일반 시민의 힘이 증가하고 정부와 기업에 대한 ‘투명성’ 압력이 증가한 것과 더불어 중요한 변화는 인터넷과 IT 기술을 발전하고 크게 확대되면서 개인 미디어(personal media)가 등장했다는 점이다. 과거 언론에 의해서만 드러나던 정부나 기업에 대한 ‘나쁜 뉴스(bad news)’를 이제 일반 시민들도 생산하고 유통할 수 있게 되었다. 소위 블로그(Blog)로 대표되는 소셜 미디어(Social media), 혹은 소셜 컴퓨팅 테크놀로지(Social Computing Technology)는 이제 누구나 정부나 기업의 잘못을 지적하고 이를 인터넷에서 공론화할 수 있게 만들어 주었다. 이런 새로운 변화들이 ‘사과’를 이 시대 리더의 핵심 언어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사과 전문가들은 ‘사과’가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가장 파워풀한 갈등 조정 수단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라자르도 지적하듯 과거 사과는 ‘약자’의 언어로 인식되어왔다. 영국의 수상이었던 벤자민 디즈레일리(1804-1881)가 “사과란 자신이 바꿀 수 없는 것에 대한 변명일 따름이다”라고 말한 것이나 시인이었던 랄프 에머슨(1803-1882)이 “분별력있는 사람은 결코 사과하는 법이 없다”라고 말한 것은 그리 놀랄 일도 아니다. 사과는 늘 하기 싫은 것, 해선 안 되는 것으로 인식돼 온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사과에 대한 패러다임이 크게 바뀌고 있다. ‘패자나 약자의 언어’에서 ‘리더의 언어’로 새롭게 조명을 받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과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직접 실천하고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미국의 대통령 버락 오바마다.
그는 대통령 후보 시절인 2008년 5월 크라이슬러 공장에서 한 여기자에게 애인에게나 쓸 법한 ‘스위티(sweetie)'라는 표현을 써서 구설수에 올랐을 때, 그 기자에게 바로 전화를 걸었고, 전화를 받지 않자 음성메시지에 구체적으로 사과를 했다. 같은 해 11월에는 기자회견 중 낸시 레이건 전 영부인에 대해 말실수를 했을 때에도 곧바로 직접 전화를 걸어 사과를 했다. 첫 인선 과정에서 자신의 정치적 대부인 톰 대슐 보건부 장관 내정자가 탈세 의혹으로 낙마했을 때에도 “내가 일을 망쳐놓았다(I screwed up)"라는 다소 과격한 표현으로 자신의 잘못을 인정했다. 한 흑인 하버드대 교수가 자신의 집에 들어가는 것을 경찰이 도둑으로 오인하고 체포했을 때, 오바마는 ’경찰의 멍청한 행동‘이라고 공개 비난을 했다가, 이 발언이 문제가 되자 자신의 실수를 공개적으로 인정하고 사과했다. 그가 교수와 경찰을 모두 백악관으로 불러 맥주를 나누며 대화를 시도한 사실은 전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오바마는 “책임의 시대에는 실수를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실수를 인정하고 다시는 그러한 실수를 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며, 우리는 그렇게 할 것”이라고 말한다.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면서 뛰어난 커뮤니케이션을 구사하는 그는 사과를 ‘위기 극복의 언어’로서 적극적으로 구사하는 리더인 것이다.
아론 라자르의 이 책이 매력적인 이유는 사과에 대해 새로운 ‘리더십의 언어’로서 깊이있게 다루면서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서술돼 있다는 데 있다. 사과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면서 수많은 관련 서적을 검토했었지만, 아론 라자르의 책만큼 방대한 자료를 인용하고 있으면서도 일반인들도 이해할 수 있도록 기술돼 있는 책을 보기 힘들었다.
이 책의 매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저자인 아론 라자르의 개인적 이력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아론 라자르는 하버드 의대 정신과 교수를 거쳐 1991년부터 무려 16년 이상을 매사츄세츠의대 학장을 지낸 석학이다. 그는 의사와 환자 사이의 관계나 커뮤니케이션에 깊은 관심을 갖고 연구해왔으며, 특히 수치심이나 창피함에 대한 심리연구에 있어 세계 최고의 권위자다. 그의 사과에 대한 예리한 분석은 이러한 그의 연구 관심사나 경력과도 연결돼 있다. 2002년에는 매사츄세츠 의대에 세워진 1억불짜리 연구 빌딩의 이름을 “아론 라자르 메디컬 리서치 빌딩”이라 명명했는데, 이는 이 대학 역사상 개인 기부액으로 가장 많은 2천 1백만불을 기부한 기업가이자 기부가인 잭 블레이스와 그의 부인인 셸리의 뜻에 따른 것이었다.
그는 ‘입양’에도 적극적이어서, 1966년에서 77년 사이에 인종이 다른 8명의 아이를 입양하기도 했다. 책에서도 나와 있듯, 그는 일반적인 부모들과 달리 아이들과의 교류 속에서도 사과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갖고 가르쳤으며, 또한 아이들에게서 사과에 대해 관찰하고 배우기도 했다. 그는 정신과 의사로서 인간의 심리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방대한 자료를 검토해, ‘사과의 핵심’에 대해 다양한 측면에서 실질적인 조언을 제공하고 있는 것도 바로 그의 이런 개인적인 삶에서 연유한다.
이 책은 그의 저작 중에서도 일반 대중들의 가장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킨 책이다. 이는 그가 사과에 대한 매우 실질적인 견해를 알기 쉽게 전달해주고 있기 때문인데, 정치나 비즈니스에서의 리더들은 물론 주위 사람들과의 관계 회복에 관심을 갖고 있는 일반인들도 폭넓게 읽을 수 있다는 데 장점이 있다.
그는 1995년에 사이콜로지 투데이(Psychology Today)라는 잡지에 “걱정말고, 사과해(Go ahead, say you're sorry)"라는 글을 썼는데, 이는 미국 내에서 많은 관심을 불러 일으켰으며, 이로 인해 오프라 윈프리 쇼를 비롯 다양한 언론에 출연하기도 했다. 그 칼럼은 첫 시작은 다음과 같다.
“사람들은 사과를 나약함의 상징처럼 보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사과의 행위는 위대한 힘을 필요로 한다(We tend to view apologies as a sign of weak character. But in fact, they require great strength).”
약자와 패자들은 진심어린 사과를 할 줄 모른다. 진정한 리더만이 제대로 사과할 줄 안다. 이 책은 진정한 리더를 꿈꾸는 이들을 위한 좋은 가이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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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류관리와 쾌락
Tracked from 지평 삭제우리 인간이 쾌락(Pleasure)을 경험하는 이유는 유익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단기적 부작용도 있지만 말입니다. 쾌락은 일종의 신호역할을 합니다. 사람들은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등을 의식적으로 판단하게 아니라, 좋은지 나쁜지에 대한 느낌에 의존합니다. 논리적으로, 이성적으로 판단했다고 "의식"하지만, 실은 느낌으로 결정한 것을 의식이 나중에 합리화한 것에 불과합니다. 쾌락을 경험하는데는 여러 방법이 있습니다. 가장 큰 쾌락 중 하나가, 잘못한..
2009/10/15 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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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에 대한 글을 읽으며, 제 사고의 지평을 많이 넓히고 있습니다. 사과를 통해 개선한다는 점에서, 사과도 일종의 오류관리라 할수 있을듯 합니다. 트랙백 겁니다.
2009/10/15 03:07안녕하세요! 좋은 의견 감사합니다 error management에 대한 논문 저도 읽어봐야겠네요. 늘 좋은 정보 감사드려요!
2009/10/15 03:25오호..멋진 책이네요. OK. 참고하겠습니다. Thanks.
2009/10/16 15:26오랫만에 술한잔 하며 즐거웠어요.
2009/10/17 01:19오래만에 들렀는데 좋은 글이 있네요. 항상 그렇지만... ^^
2009/10/17 01:05사과를 하기 싫으면 실수를 하지 말아야 하는데, 사람이 실수하지 않을 수 없으니
잘못한 일이 있으면 당연 사과를 해야지요.
Bob이 11월 13일에 만나자고 하지요?
네. 회장님. 11월에 또 뵙고 즐거운 시간 갖겠습니다~.
2009/10/17 0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