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살면서 누가 암을 갖게 되었다고 치자..."

지난 금요일 새벽 장례식장을 나서는데, 본인이 의사이면서, 몇 시간 전 역시 의사이셨던 어머니를 암으로 잃은 그 친구가 맥주 한 캔을 들고 허공을 쳐다보며 저에게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저에게 가장 소중한 친구인 그와 제가 만나기로 한 날, 그의 어머니께서는 돌아가셨습니다.

"나 역시, 어머니께서 암으로 진단 받으셨을 당시인 오 년 전에는 참 혼란스러웠지. 그런데, 그런 어머니를 지켜보며 지내보니까 말야... 암을 진단받은 환자나 그 가족이 과연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더라구..." 말투가 차분하고 느린 그 친구가 계속 이야기를 이어갔습니다.

"어머니께서는 불과 얼마 전까지도 환자를 보셨어. 당신만의 의미가 있었겠지. 중요한 건 말야. 암을 가지게 되었을 때, 이를 자기 삶의 일부분으로 온전히 받아들이는거야... 그것도 우리 삶의 일부라구. 그걸 부정하게 되면, 매우 고달퍼지는 거지... 그리고 나서는, 그런 변화를 갖게 된 나의 삶을 어떻게 재 해석하고,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고, 또 다른 나의 삶을 살아가는가, 그게 중요해. 치료받는 것과 함께 말야..."

"스마트하셨던 것 같아..." 제가 불쑥, "지금 어머니께 무슨 말씀을 드리고 싶니?"라고 묻자, 그 친구는 암을 갖게된 어머니께서 당신의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또 다시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셨던 점을 이야기하며 그렇게 말했습니다.


2. 그 이야기를 들으며, 얼마 전 그 자신이 티벳불교 신자인 미국인 코치가 제게 해 준 말이 생각났습니다. 그가 Shambhala Institute에서 하루 아침에는 전체 명상 시간을 이끌었는데, 그 때 해 준 말이 코쿤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코쿤이란 두려운 상황이 올 때, 그 상황을 똑바로 쳐다보거나, 받아들이기 보다는, 이를 피해 자신을 숨김으로써, 잠시 편안한 상태로 가려고 하는 마음을 지칭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설명을 들으며, 제가 좀 더 이해를 쉽게 하기 위해 예로써 생각해본 것이 있습니다. 길거리를 건너는데, 차가 자신을 향해 돌진하고 있을 때, 그 상황이 너무도 끔찍해서 눈을 감아버리는 것은 바로 코쿤으로 들어가는 것이지만, 사실 필요한 것은 그 상황을 제대로 인식하고, 적극적으로 사고를 피할 수 있는 action을 취해야 한다는 것이었지요. 그는 바로 그것이 코쿤과 아닌 것의 차이점이라고 이야기해주었습니다.


3. 살면서, 때로는 크고 작은 위기가 우리 삶에 다가옵니다. 어느 누가 자유로울 수 있을까요. 결국, 시점이 다를 뿐, 사람은 누구나 좋을 때가 있으면, 또 힘들 때가 있지 않나 싶습니다. 그래서, 일이 잘 될 때, 더 조심하라고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친구가 제게 해 준 이야기, 그리고 코쿤의 이야기를 들으며, 위기 상황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또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위기관리 프로젝트를 하다보면 코쿤의 상태로 가려고 하는 고객들을 가끔 보게 됩니다. "설마 그게 더 나빠지겠어..." "괜찮을거야..."라고 하면서, 그 상황을 받아들이기가 힘들거나, 싫은 것이지요. 인간으로서 자연스러운 감정이라 생각합니다. 신정아씨 역시, 자신이 가짜 학위로 세상을 속였다는 죄책감보다, 그것이 세상에 알려졌다는 것을 더 속상해하며, 코쿤의 상태로 들어가 있기에, 그렇게 부정하고, 변명으로 일관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 어제는 그 친구의 친한 친구로서 운구를 담당했습니다. 화장장에 들렀다가, 그의 어머니를 편히 모실 곳에서 마지막으로 의식을 치르고 난 후, 그 친구는 함께 있던 아버지, 누님 내외, 친척분들, 그리고 함께 한 친구들에게 돌아가며 큰 절을 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어머니를 기억하며. 그 때까지도 겉으로는 담담하게 있던 친구가 눈물을 흘리며 절을 하는 모습에 저도 왈칵 눈물이 나고야 말았습니다...

장례식장에 가면, 누구나 사는 것이 허무하다,고 이야기합니다. 저 역시 그렇습니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 이번에는, 사는 것은 어쩌면 참 아름답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자신의 의미를 추구하며 살다가, 그리고 떠났을 때, 사랑하는 사람들은 떠난 사람을 아름답게 기억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제 외할머니를 그렇게 기억하는 것처럼.

그 친구가 이제 어머니께서 떠나신 빈자리를 받아들이며, 다시 새로운 삶을 살아가길 바랄 뿐입니다. 어머니께서도 그런 친구의 모습을 편안하게, 그리고 대견하게 바라보실 것 같습니다.

시간이 좀 지나면, 지난 주 만나기로 했던 약속을 다시 잡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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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lex  수정/삭제  댓글쓰기

    잠시나마 주위를 되돌아 보는 계기가 되는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2007/07/29 20:00
    • 김호  수정/삭제

      감사합니다. 저 역시, 이번 일을 계기로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되고, 또 되돌아 보게 된 것 같습니다.

      2007/07/29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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