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관리 트레이닝 13)
설화(舌禍)가 생기는 이유
김호(더랩에이치 대표/hoh.kim@thelabh.com)
사례 #1: 지난 9월 총리 및 장관 후보자들의 인사청문회는 우리 사회의 주요 화제였다. 의원들의 매서운 질문과 호통에 답변하는 후보자들의 모습도 제각각이었다. 잠시 2007년 10월 금융감독위원회에서 열린 국회정무위원회 국정감사장으로 이동해보자. 이날 눈길을 끈 것은 외국인 은행장으로서는 최초로 당시 존 필메리디스 SC제일은행장이 증인으로 출석한 일이다. 당시 열린우리당의 신학용 의원은 SC 제일은행의 문제를 국감에서 철저히 파헤치겠다고 공헌한 터였다. 언론 보도에 나온 당시의 질의 응답 몇 개를 인용해보자.
신 의원: "영국의 스탠다드차타드은행(SCB) 본사가 SC제일은행의 국내기업 대출에 부당하게 개입하고 국내기업의 정보까지 입수한 이유가 무엇인가?"
필메리디스 행장: "모든 기밀문서에 대한 보안은 영업의 핵심입니다...제3자(SCB 본사)와 문서를 공유한 것은 한국법 내에서 합법적으로 한 것입니다."
신 의원: "SCB 본사가 SC제일은행 경영에 사사건건 간섭한다"
필메리디스 행장: "그 같은 얘기는 완전히 근거없는 소문입니다......SC제일은행은 SCB그룹 내에서 완전한 독립 법인이며 모든 권한은 나에게 위임돼 있습니다"
신 의원: "결국은 하나은행에 SC제일은행을 팔고 떠나는 것 아니냐?"
필메리디스 행장: "완전히 근거 없는 루머입니다."
당시 보도에 따르면 필메리디스 행장은 국감장에서 흥분하지 않고 차분하게 응답했으며, 매 번 서(Sir)라는 경어체를 붙였다. 그는 "증인 출석을 영광으로 생각하며 의원님의 제안에 감사한다"는 말로 답변을 마쳤다. 당시 상황을 비교적 소상하게 보도했던 중앙일보(2006년 10월 21일자)는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증인 출석을 요구했던 열린우리당 신학용 의원은 'SC제일은행의 문제를 국감에서 철저히 추궁하겠다'고 별렀다. 결과는 신 의원의 '완패'였다. 필메리디스 행장의 논리정연한 답변에 신 의원은 제대로 된 추궁 한번 못하고 '증인으로 출석해줘 고맙다' 는 말로 질의를 마쳐야 했다."
사례 #2: 동아일보의 일본 도쿄 특파원 천광암 기자는 2007년 12월 26일자 보도에서 일본 정부 부처의 기자회견 트레이닝에 대해 보도했다. 이에 따르면 일본 외상을 비롯 외무성 간부 중 언론을 대할 가능성이 있는 모든 이들을 대상으로 소위 '미디어 트레이닝'이라는 것을 도입한 것이다. 단순한 강의가 아닌 실제 카메라 테스트를 통해 언론 앞에서 정부의 입장을 어떻게 핵심 메시지 위주로 전달할 수 있을지 등에 대해 세부적인 트레이닝을 받는다고 적고 있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일본의 경제산업성이 2008년 기업 30만 곳에 '리콜 핸드북'을 만들어 배포하면서 정부가 기업의 기자회견 실무에 대한 조언을 제공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정부 책자에는 기업이 리콜 실행시 기자회견을 '귀찮고 번거로운 일로 생각하지 말고 피해자에 대한 사죄, 신뢰관계의 유지 및 회복을 위한 기회의 장’으로 여기라고 쓰고 있다니 정부의 적극적인 태도에 더욱 놀랄 뿐이다. 이 기사에 따르면 일본에서 기업의 미디어 트레이닝 수요는 급속히 증가하고 있다.
필메리디스 행장의 질의응답 자세나 메시지 전달 기술은 커뮤니케이션 전문가들이 보기에도 정석을 따르고 있다. 그는 자신이 파악하고 있는 사실과 의견을 바탕으로 전문적인 메시지 기술을 으로 활용했다. 선진 기업의 임원들은 일본의 사례와 마찬가지로 1:1 혹은 소규모의 미디어 트레이닝을 받고 있다. 그것도 매년 정기적으로 반복 트레이닝을 받고 있다.
아이러니컬한 것은 한국 내에서 언론사의 기자들은 인터뷰하는 기술을 선배 기자나 언론사 매뉴얼, 특정 프로그램을 통해 교육받는데, 정작 기자들의 질문을 받는 기업의 임원들은 이에 대한 특별한 프로그램을 받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라는 점이다. 한 가지 다행스러운 것은 동아일보의 보도(2006년 4월)처럼, 최근 3-4년 사이에 한국의 대기업을 중심으로 이러한 임원들의 미디어 트레이닝 프로그램이 조금씩이나마 확산되어가는 추세이다.
일부 언론과의 인터뷰를 해 본 임원 중에는 기자에 대해 매우 부정적인 선입견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 기업이 때론 공격적으로 영업을 하듯, 언론사의 기자들은 특히 기업의 위기 상황에서 새로운 사실을 알아내기 위해 공격적으로 질문을 던지기 마련이다. 물론 기자들 중에는 사실과 다른 기사를 써서 큰 문제가 되는 경우도 있지만, 많은 경우 기자의 프로페셔널리즘으로 이해해야 할 측면이 있다. 중요한 것은 기업의 입장에서도 프로페셔널하게 기자의 질문에 답변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점이다.
필메리디스 행장의 답변을 다시 눈여겨보자. 신 의원의 "부당한 개입" 의혹에 대해서 "부당하게 개입한 적 없다"라고 답하기 보다는 보안이 영업의 핵심이며, 한국법내에서 합법적으로 이루어진 사실을 부각하여 앞서 본 칼럼에서 이야기했던 '코끼리의 오류'(질문의 부정어를 다시 반복 부정함으로서 오히려 더 큰 부정성을 불러일으키는 오류)에 빠지지 않고 있다.
또한 신 의원이 루머를 들이대며 추궁을 할 때에도 사실을 들어 단순 명료하게 부정하고 있다. 국감이나 청문회, 인터뷰 등에서는 보통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이 더 큰 파워를 갖게 되어 있고, 이들에게는 공통적인 특징을 발견할 수 있다.
2008년 2월 22일 한 일간지(조선일보)에는 사물놀이의 대가 김덕수씨의 인터뷰가 실렸다. 이 인터뷰 기사에는 다음과 같은 기자(최보식)의 표현이 나온다. "그를 슬쩍 찔렀다." 평이하게 혹은 긍정적으로 물어볼 수 있는 것을, 질문자는 부정어로 비틀거나, 민감한 부분을 건드리게 되어 있다. 김덕수씨의 인터뷰에서 기자가 사용한 질문을 보면 이런 경향을 뚜렷이 볼 수 있다.
기본적인 질문의 뜻 | 기자가 실제 인터뷰에서 물은 질문 |
"돈은 많이 모으셨습니까?" | "그런데 빌딩은 아직 못 세웠습니까?" |
"사물놀이가 단순한 음의 반복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십니까?" | "한번은 즐길 수 있지만, 계속 감상하기에는 음(音)이 단조롭고 요란하고 시끄럽다는 반응도 있더군요..." |
"평생 연주하시면서 열심히 연주하시느라 많은 장구들을 쓰셨겠습니다..." | "그만큼 두들겼으면 장구 가죽이 어디 남아나겠나요?" |
"같은 일을 반복하시다가 힘드실 때는 없나요?" | "평생 그렇게 치면 신물이 날 법도 한데..." |
"사물놀이를 결성했을 때, 멤버들 사이의 관계는 어떻게 이끌어 가셨나요?" | "사물놀이를 결성했을 때, 다들 개성이 강해서 갈등이 많았죠?" |
"이름을 '김덕수와 사물놀이'라고 지으신 이유가 있나요?" | "이름이 '김덕수와 사물놀이'였으니, 다른 멤버 입장에서는 들러리를 선다는 느낌도 있었겠지요?" |
물론 평이하게 물으면 인터뷰의 '맛'이 살지 않는다. 기업의 입장에서는 언론의 이러한 속성을 잘 파악하고, 이에 대해 적절하게 무리없는 대응을 할 수 있는 준비와 연습을 해야 한다.
기자의 특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감정적으로 싸우는 임원도 문제이지만, 기자에게 무조건 잘 보여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있는 것도 문제이다. CNN의 토크쇼 사회자로 유명한 래리킹(Larry King)은 그의 저서 '대화의 법칙(How to talk to anyone, anytime, and anywhere: The secrets of good communication)'에서 미국의 어떤 법도 기자의 질문에 모두 답변해야 한다는 강제사항은 없다고 조언하고 있다.
이런 사례를 2008년 2월 미국의 여배우 안젤리나 졸리와 CNN의 인터뷰에서 확인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언론도 보도한 바 있는 이 인터뷰는 UN의 자원봉사자로 이라크를 방문한 안젤리나 졸리에게 CNN기자가 인터뷰 말미에 그녀의 임신여부에 대해 묻자 기자에게 살짝 면박을 주며 질문에 대한 답변을 거절하는 장면이다.
당시 기자가 "할리우드에서 나오는 보도에 따르면..."하고 말을 꺼내며 살짝 웃자, 졸리는 정색을 하며 "그만 해요. 기자님은 CNN에서 나오셨잖아요. CNN의 전통에 맞추어, 그런 질문은 하지 말아주세요"라고 응수한다. 그래도 기자가 한 번 더 웃으며 살짝 묻자 졸리는 "제가 꼭 대답해야 하는 것은 아니겠지요?"라고 답했고, 그제서야 기자는 "물론이다. 더 이상 묻지 않겠다"라고 답했다.
훈련되지 않거나 언론의 생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 무조건 기자의 질문에 모두 답변하다가 공개적으로 말하지 말아야 하는 기업의 비밀 정보나 개인 신상에 대한 정보 등을 발설하여 문제가 되거나, 혹은 무조건 '노 코멘트'로 일관하여 오히려 더 악화시키는 경우도 있다. 더 나아가 기자의 카메라 렌즈를 막거나 밀치는 것은 언론 대응의 기본을 모르는 자세라 할 수 있다. 기자는 '뉴스 거리'를 보도해야 하는 사명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며 때로 CEO나 임원들의 어이없는 실수는 언론에는 흥미로운 뉴스로 등장하게 된다.
기자의 특성을 보여주는 또 다른 사례를 보자.
사례 #3: 2008년 3월 8일 조선일보의 강인선 기자는 김우중 대우그룹 전회장과 한 시간여 단독으로 만나 인터뷰를 했다. 하지만 김 전 회장은 인터뷰를 마치며 인터뷰를 기사화하지 말 것을 기자에게 부탁 했다. 그러면서 기사화하지 않을 경우 다음에 다시 인터뷰를 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인터뷰를 기사화하면 다시는 그 기자를 보지 않겠다고 이야기했다. 결국 그 인터뷰는 기사화되었다. 기자는 기사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나는 어쩌면 다시는 김 전 회장을 만나지 못할 위험부담(?)을 감수하기로 했다. 기자와 한 시간 동안 만난 후 기사를 쓰지 않을 것이라고 기대할 정도로 그가 세상물정을 모르는 사람은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끔 보게 되는 다음과 같은 사례에서 우리는 '세상물정'을 모르는 장관을 접하게 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사례 #4: 2008년 5월 당시 김성이 보건복지가족부 장관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과 관련 개인적 사견을 기자에게 이야기했다가 곤혹을 치렀다. 보도에 따르면 기자들이 특별히 질문을 먼저 던진 것도 아니고, 복지부 보육정책관과 출입기자의 오찬 자리에 예고 없이 참석하여 자신이 비보도를 전제하고 의견을 밝혔다. 이 자리에서 그는 “지금까지 30개월이 안 된 소를 먹는 줄 몰랐다," "(외교통상부의) 잘못을 농림부가 대신 지적받고 있는 것이다,” 등의 사견을 취재진에게 전달했고, 당시 조류 인플루엔자 이슈와 관련해서는 “농림부가 최초 대응을 잘못했다”는 말을 했다. 언론에는 자신이 책임을 맡고 있는 부처 이외의 사항에 대해서 왈가왈부하는 것은 대언론 커뮤니케이션의 기본에 어긋나는 사항이다.
이러한 발언이 기사화되자 김 전 장관은 “비보도를 전제로 부담 없이 나온 말들이었음을 이해해 달라," "와전됐다" 등으로 불을 끄려했지만 이미 늦은 때였다. CEO나 장관 등 리더의 말 한 마디는 때로 우리 사회에 엄청난 영향력을 가져온다. 수 백명의 사람 앞에서 대중 연설을 앞 둔 리더에게는 연습이 필요하다는 점을 이해할 것이다. 기자 한 사람과 나누는 이야기는 수 백명이 아니라 수 십만명 수 백만명에게 기자를 '통해서(through)' 이야기하는 것이라는 기본적인 사항도 이해하지 못한 리더들은 지금도 너무나 어설픈 실수를 저지르곤 한다.
필자는 직업적으로 리더들의 설화(舌禍)를 주의 깊게 보고, 모아 놓곤 한다. 조만간에는 리더들의 설화집(舌禍集)이 하나는 족히 나올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끝).
위기관리13_DBR_김호.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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