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00 병원에서 병원 내에서 수술이나 입원 중에 감염된 환자의 비율을 조사해서 발표한 적이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최초였기 때문에 그 수치가 높은지 낮은지에 대한 판단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 병원에 환자가 뚝 끊겨버렸다. 한 전문가는 이런 말을 했다. "아마도 00 병원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감염률이 낮은 병원일 겁니다. 다른 병원은 감염에 대한 인식조차 없을 텐데, 감염에 대한 예방 조치가 있을 리가 없지 않습니까."
(KAIST 대학원) 총학생회에서는 2004년, 2005년, 그리고 2008년, "대학원생 연구환경 실태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어떤 이들은 이런 설문조사를 발표하는 것, 자체가 KAIST의 오점을 드러내어 학교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행동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러한 주장은 잘못이 있더라도 덮어두고 좋은 모습만을 그럴싸하게 포장해서 보여주는 것이 최선이라는 잘못된 생각이다. KAIST의 구성원 중 누구도 KAIST의 가치를 떨어뜨리고자 노력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러한 설문조사의 목적은 더 나은 KAIST를 만들고 더 나은 연구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것이다. 어디가 아픈지도 모르고 어딘가를 치료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아프지 않다고 하더라도 약한 부분을 강하게 단련하는 것은 여전히 의미 있는 일이다...
(출처: 제 36대 KAIST 대학원 총학생회, 2008 대학원 연구환경 실태조사, 1쪽 서론 中)
KAIST에서의 세 번째 학기가 시작되어 첫 주가 지나갔습니다. 얼마전 발생한 한 학생의 블로그를 통한 학교측에 대한 비판과 학교의 학생에 대한 고발 사건(며칠 전 고발을 취하했다고 합니다)을 접하면서 개인적으로 제가 다니고 있는 KAIST에 대해 이런 저런 생각을 해보게 되었습니다. 지난 한 주 동안 생각했던 것을 두서없이 나열해봅니다.
1. 대학원 총학생회의 설문 조사 결과 (총장 개혁 분야)
며칠 전 학교를 지나가다 흥미로운 책자를 받아 꼼꼼히 읽어보았습니다. KAIST의 대학원총학생회에서 총 1,044명의 대학원생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를 정리한 것이었습니다. 몇 가지 결과를 살펴봅니다.
/ KAIST에 대한 이미지:
. 전반적으로 긍정적입니다. 매우 긍정적(12.2%), 조금 긍정적(51.8%)의 비율이 매우 부정적(1.2%), 조금 부정적(9.8%)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습니다. (보통 25%)
. 내향적과 외향적이라는 척도로 보았을 때는 매우 내향적(23%), 조금 내향적(47%)인 반응이 외향적이라는 의견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습니다.
/ 학교정책에 학우들의 의견 반영: 이에 대해서는 부정적으로 나타났습니다. 전혀 반영되지 않는다(24.6%) + 잘 반영되지 않는다(51.1%)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습니다.
/ 총장개혁:
올해 설문조사결과 중 가장 제 관심을 끌었던 부분입니다. 몇 가지 살펴보면
. 테뉴어 심사 강화: 매우 찬성(34.3%) + 다소 지지(38.1%)로 이에 대해서는 압도적인 지지의사를 보내고 있습니다.
. 전과목 영어강의화: 매우반대(31.5%) + 다소 반대(31.9%)로 지지보다는 반대 의사가 훨씬 높습니다.
. 개혁전반지지도: 매우찬성(5.6%) + 다소 지지(34.6%) + 보통(22.9%) + 다소 반대(27.7%) + 매우 반대(9.3%)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박사 고년차에서 반대 비율이 높았다는 점입니다. 이에 대해 총학생회는 "박사 3-4년차, 고년차 정도의 학생들은 러플린 총장의 좌절을 이미 목격했고, 서총장의 개혁과 이전 정책들을 비교할 수 있을만한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있었던 경우에 해당한다. 이 같은 결과는 이들 박사과정 학생들의 연륜(?)이 담긴 의견들에 대해서 분명히 귀기울여가며 개혁정책을 추진해야 한다는 것을 시사한다."라고 적고 있습니다.
저는 이런 조사의 실행과 발표, 그리고 이에 대한 공개적 논의가 매우 건강하다고 보았습니다. 지난 2004년과 2005년 이후에 3년만에 실행된 실태조사가 적어도 매년 1회씩은 진행되어 발표되기를 희망합니다.
2. 이번 사건에서 KAIST 대응의 아쉬운 점
카이스트의 한 학생의 불만 제기에 대해 KAIST는 법적 고소를 했다가 최근 취하했습니다. KAIST총학생회에 따르면 학교측에서는 "익명성의 문제가 사라졌기에" 고소를 취하했다고 합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KAIST가 이번 사건에 대해서 아직까지 "공식적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는 것에 대해 위기관리라는 관점에서 아쉬운 마음입니다. (여기에서 언급했던 작년의 빠른 대응에 대비해서 더욱)
물론, 이와 같은 상황에서 조직(학교)의 입장에서는 "그럼 앞으로 학생들이 블로그에다가 불만을 제기할 때마다 학교가 일일이 다 반응해야 하느냐?"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고객과 위기관리 컨설팅 회의를 한다면 당연히 거론될 이슈입니다.
이에 대한 제 대답은 "물론 아닙니다"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가 더 붙습니다. "하지만, 과거에 비해서 이런 사안에 대해 조직이 반응해야 할 경우의 수는 훨씬 더 증가했습니다." 적어도 이번 사안에 있어서 대응을 해야 할 것인가 말것인가와 관련 고려해야 할 점은 이번 사건이 얼마만큼 공론화되었는가 아닌가에 대한 판단입니다. 적어도 KAIST 내부에 있는 사람들, KAIST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공론화가 되었고, 온라인에서 시작한 논의가 오프라인의 주요 언론에까지 기사화가 되었습니다.
학교측에서는 두 가지 대응을 고려할 수 있습니다.
1. 내부 구성원에게 입장을 설명하는 경우 (결국 외부로 공개가 되겠지만)
2. 외부 구성원에게까지 공식적으로 입장을 설명하는 경우 (보도자료, 혹은 웹사이트에서의 설명)
철저히 KAIST를 위한 시각에서 보았을 때, 2번에 대해서는 논의가 있을 수 있겠지만, 적어도 1번은 당연히 해야 한다고 권할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은 지금 이순간까지도 제가 KAIST의 학생으로서 부여받은 이메일로는 이번 사건에 대한 설명이나 입장 표명이 없다는 점입니다. 평소에는 자주 학교 전체 메일이 오지만, 이번 사건과 관련해서는 없네요. 교직원에게까지는 전체적으로 설명이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학생에게도 이 정도의 이슈에 대해서는 입장을 밝히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당장, 학교측의 설명이 없으니, 학생이 제기했던 입장만이 웹상에서 돌아다닐 뿐입니다. KAIST를 위해서도 좋지 않은 이유지요. 이번 사건이 학교측의 명예를 훼손했다면, 어떤 점이 사실이고 아닌지를 밝히는 것이 'KAIST다운' 글로벌 접근방식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더 욕심을 낸다면 학교측에서 경찰에 신고할 정도로 신경쓸 사안이라면 '공개적으로 입장을 논하기 위해 신원을 밝히라'라고 학생에게 요구했다면, 사건의 양상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3. 조직원의 불만 표출과 블로그
이번 사건에서 물론 불만을 제기한 학생은 나름대로 많은 고민을 했을 것입니다. 학생의 글을 처음 읽었을 때 제 느낌은 "매우 학교에 대해서 실망을 많이 했구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쓴 글이라 좀 감정적으로 격앙되어있다는 점은 이해합니다. 물론, 이 학생이 제기한 학교의 선거 개입 논란에 대해서는 앞으로 사실 여부와 옳고 그름을 가려야 하겠지요. 반면, KAIST의 개혁이 "어디까지나 언론플레일뿐"이라고 주장하는 대목에서는 고개를 갸우뚱했습니다. 위에서 제시한 대학원총학생회의 설문 결과에서도 나와있지만, 분명 교수의 테뉴어 심사 강화 등으로 카이스트가 앞장서서 우리사회에서 선도한 부분이 분명히 있기 때문입니다. 어느 조직이나 잘하는 점과 못하는 점이 있기 마련일텐데, 언론홍보를 통해 잘하는 점만 부각되었을 수는 있겠지요. (반대로 이 학생의 포스팅에서는 KAIST의 부정적인 점이 부각되어 있습니다)
학생의 블로그 포스팅을 읽으면서, 1) 사실인가 아닌가; 2) 균형잡힌 시간인가 아닌가의 문제와 더불어 제가 고민하게 된 점 중의 하나는 '익명성'이 옳은가 아닌가의 문제입니다. 과연 이러한 불만을 표출할 때 익명으로 하는 것이 옳을까요? 물론, 바른소리를 통해 신변의 위협을 느낄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제 입장은 이런 경우에 되도록 실명으로 거론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첫째, 이렇게 공개적으로 불만을 블로깅할 정도라면, 나름 많은 고민을 했을 것이고, 용기도 필요했을 것입니다. 자신의 주장이 사실이고 균형잡힌 시각이라는 확신을 바탕으로 한 발 더 나아가 실명으로 거론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어차피 이번 사건에서도 결국 학교의 신고로 신분은 밝혀졌기도 했구요) 둘째, 익명으로의 비판이 오용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미 업계에서는 경쟁사 품목에 대해 온라인상에서 비방을 하는 글을 올리는 경우가 문제가 된 적이 여러번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셋째, 개인이 정당한 비판을 하는데 신분을 밝히기 힘들다면, 오히려 위의 대학원생 설문조사처럼 개개인의 의견이 아닌 집단적인 의견을 모아 공식적인 채널을 빌려서 표출하는 방법도 있을 것입니다.
4. 마지막으로 영어 수업에 대한 나의 의견
KAIST는 전과목 영어강의화를 표방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개인적으로는 '전과목'을 영어강의로 진행한다는 의견에 대해서는 반대의견입니다. 작년 KAIST의 첫 해를 보내며 모두 6개의 과목을 수강했는데, 그 중 2개를 빼고는 영어강의였습니다. 예를 들어, KAIST가 외국의 우수한 교수를 선발하여 학생들이 영어로 수업을 듣는 것은 찬성입니다. 저 역시 지난 학기에는 Word of Mouth를 전공한 인도의 교수로부터 아주 흥미롭게 수업을 들었습니다. 저는 국적을 가리지 않고 우수한 외국 교수를 초빙하는 것에 대해 대찬성입니다.
하지만, 영어로 강의를 해야 '우수한' 평가를 받을 수 있다는 눈에 안보이는 압력이 생긴다면 이에 대해서는 반대입니다. 영어 때문에 수업 콘텐츠의 질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지요. 다행스럽게 제 경험으로 보면 국어로의 수업을 고집하는 교수님들은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전세계에서 KAIST로 유학을 오는 학생들을 고려한다고 하더라도 영어 수업에 대한 정책은 일정 %를 정하여 예를 들어 50% 영어강의화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지난 한 주는 학기 첫 주이기도 했지만, 이번 사건으로 인해 KAIST에 대해 한 구성원으로서 몇 가지 생각해보는 한 주이기도 했습니다. 문제없는 조직이 어디있겠습니까만, 중요한 것은 문제점에 대해 오픈하여 이야기하고, 그로부터 합의된 문제점을 개선해가는 조직이 결국 good to great이 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번 학생의 블로그 이슈와 대학원총학생회의 조사결과 발표를 통해 KAIST가 다시 한 번 자체 개혁에 대해 돌아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2009/02/05 22:18
2009/02/05 2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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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생각 잘 읽었습니다. 의견이 있으면 자신을 밝히고 해야 맞지요. 익명이기 때문에 요즘 악플 문제가 사회적인 잇슈가 되잖아요?
2009/02/09 19:57내일 차를 일산까지 가지고 오겠다고 렉서스에서 연락이 왔더군요. . 덕분에 일주일 시승합니다.
네 회장님. 자신을 밝히고 하는 공개적인 논의가 중요할 듯 합니다. 드디어 시승하시는군요. 멋진 하이브리드 시승기 기대하겠습니다!
2009/02/10 0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