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안반도에서 혁수로부터 온 편지

Story 2007/12/12 06:01 Posted by 김호
어제 저녁 함께 고생했던 제 군대 동기이자, 절친한 친구인 경향신문의 정혁수 기자가 태안에서 전자우편으로 보내온 소식의 일부를 그 친구의 허락을 받고 올립니다. 친구 녀석이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존대말로 보낸 편지에 저를 참조(cc)해준 것이지요. 이런 사건 속에서 기자의 상황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참고로, 그가 쓴 기사 두 건을 링크합니다.

태안경제 삼켜버린 '검은 쓰나미'
시커먼 해안사구, 어디에도 '생명'은 없었다.



"사랑하는 가족 모두 잘 지내리라 믿습니다.
 
여기는 `기름천국' 태안입니다.그러고보니 지난 9일(日) 당일출장으로 집을 나온지 벌써 3일째가 되네요...(중략)
 
오늘은 `사랑하는' 여러분들의 이해를 돕기위해 이 곳 생활에 대해 잠깐 얘기하겠습니다.
 
취재 베이스 캠프가 설치된 곳은 태안해양경찰서 2층 취재기자실 입니다. 방송, 중앙지, 지방지, 통신 등 국내 거의 全매체가 이 곳에 모여 있습니다. 취재 및 사진, 카메라 기자만 해도 100여명 정도 됩니다.
 
숙소는 차로 10분 거리에 구했습니다. 모텔입니다. 7층짜리 건물인데 숙박한 사람들의 직업이 똑같습니다. 기자들이죠. 하하. 그래서 복도에서 만나는 기자들과 쉽게 친해집니다. 비용은 1박에 4만5000원 입니다.
 
기상은 7시쯤 합니다. 곧바로 반신욕을 한 뒤 8시전에 기자실로 나옵니다. 밖에서 보시기에는 기자들은 기사로 승부를 보는 것 같지만 하루의 '승부'는 지면에서만 벌어지는 게 아닙니다. 사실은 기자실에서 `자리잡는 것'에서 하루의 승패가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학창시절 시험철이 되면 대학 도서관에서 `메뚜기'들이 기승하는데 기자실 풍경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이때만큼은 선후배간의 예의도 사라집니다.
 
자리를 잡고, 노트북을 켜고 타사 보도및 오늘 일정 등을 미리 챙깁니다. 오늘은 아침을 경찰서 구내식당에서 3000원 짜리로 해결했는데 꽤 맛있더군요. 해경이라서 그런지 몰라도 반찬에 꼭 `바다고기' 가 올라왔습니다. 여느때같으면 그러지 않았을텐데 요즘 상황이 상황인지라 `혹시 기름에 오염되지 않았을까'하는 마음에 `손길'이 주저주저 하더군요.
 
식사 뒤에는 그날 취재일정에 대해 회사 선배와 통화를 나눕니다. 그리고 잠시 커피 한잔. 이때 정말 행복합니다.
 
10시가 되면 해경 경비구난국장의 오전 브리핑이 있습니다. 한 40여분 진행되는데 이때는 전일 방제작업상황, 금일 예정상황, 조류의 방향, 방제실적 및 질의응답으로 이어집니다.
 
브리핑을 끝내고 10시40분 환경운동연합 관계자 등과 통화했습니다. 사고발생후 오늘 처음 오염실태조사가 실시되거든요. 저는 해경상황실에서 차로 40분 정도 떨어진 신진도항에서 11시30분 조사팀과 미팅을 가졌습니다.
 
이들과 함께 인근 지역을 돌며 갯벌, 해안가 오염실태와 마을주민들의 피해 증언을 기록했습니다. 다들 힘들어 하더군요. 자신이 관광어선을 운영한다고 소개한  30대 남자는 "3대째 바다일을 하면서 살아 왔는데 이제는 정든 고향을 떠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고 했습니다. 그 낙담하는 모습에 어떤 위로의 말을 해 줘야 할지 답답했습니다.
 
기사작성을 위해 동행취재를 중단하고 해경상황실로 다시 차를 몰았습니다. 점심은 자동으로 `skip' 했습니다. 해경 입구에 다다를 즈음 주변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1시간 뒤 방문할 예정이라고 하더군요. 기사를 쓰다 보충취재를 위해 휴대폰을 사용하려고 보니 안테나가 뜨질 않았습니다. 경호실에서 대통령 경호를 위해 전파차단기를 작동하고 있었기 때문이죠.
 
10매 분량의 원고를 3시40분까지 겨우 마감했나 했더니 서울에서 부장에게 전화가 옵니다. 동행취재에 대해 몇가지 질문과 답변이 이어졌습니다. 한숨 돌릴까 하니 해경 공보관이 "5분뒤 오후 브리핑 하겠습니다"며 자리정돈을 부탁합니다. 쉴틈이 없네요. 하하.
 
남아있는 일정은
 
저녁먹고 다시 돌아와 TV모니터링 등을 끝낸 10시쯤이 될 것 같습니다. 그러고보니 내일은 또 뭘 써야 될지 벌써부터 머리가 아파오네요. 산재에서 인정치 않는 직업병입니다.
 
오늘 마감한 기사는 내일자(12일) 1면 톱 기사로 편집됐습니다. 신문 또는 인터넷에서 기사를 확인하실수 있습니다.
 
ps.집에서 나와보니 가족의 소중함을 다시 느끼게 됩니다. 일상으로 돌아가도 이 마음 잊지않고 소중히 하겠습니다. 계속되는 추운 날씨 건강하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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