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한 후배이자, PR업계의 든든한 동료이고, 실력도 뛰어나 인정받는 OB맥주의 정용민 팀장님이 한화 사태와 관련 "한화 위기 관련 이슈들의 충돌"이란 재미난, 그러나 의미있는 글을 올렸다. 한화사태와 관련하여 소위 '교과서적인 답변'과 '현실적인 답변'을 대비시켜가며 외부의 시각과 내부 홍보팀의 시각이 다를 수 밖에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 일부 과장된 것으로 보이는 부분도 있으나, 이러한 의견의 격차와 충돌은 흔히 있는 것이다.
이 글을 읽으면서, 그 동안 진행했던 위기관리 프로젝트를 생각하며 '가장 바람직한 위기관리의 프로세스와 결과는 어떻게 나올 수 있는 것인가?'를 생각해 보았다. 몇 가지 생각:
1/ 경영에서 다른 의사결정과 마찬가지로, 외부의 전문가 의견만을 100% 따르는 것도, 혹은 외부의 의견이나 내부의 다른 의견을 무조건 무시하고, 위기상황에서 위기관리를 위한 의사결정을 단독적으로 내리는 것은 결론적으로 성공할 때도 있으나, 위험(risk)이 큰 의사결정이다. 위기상황에서는 위험요소를 되도록 낮추는 것이 중요하다.
2/ 나의 경험에 따르면, 바람직한 위기관리 결과는 다음과 같은 함수관계로 표현할 수 있다:
즉, 바람직한 위기관리의 결과(DCMR)는 내부의 관계역학(IRD: 혹은, '내부의 정치적인 상황'이라고 표현해도 좋겠다)과 외부의 stakeholder들과의 관계 역학(ERD: 혹은 '외부의 정치적인 상황')을 '균형있게(balanced)' 고려하여 의사결정을 내리고, 이를 행동에 옮기는데서 나온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균형있게'라는 말은 기계적인 50:50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상황에 따라 40:60이 될 수도, 70:30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러한 '균형'은 원칙적인(교과서적인) 위기관리 지식(basic crisis management knowledge)으로는 안되며, 상황 판단에 대한 '지혜(wisdom)'로부터 가능하다.
최근의 한 가지 예로, 일본의 아베총리가 위안부이슈에 대한 사과문제에 접근하는 방식을 보면, IRD(일본 내부의 상황)를 더 많이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이 글에서는 그의 판단이 옳았는가, 아닌가에 대해서는 논의하지 않기로 한다. 이미 나타나고 있는 미국의회의 반응이나, 향후 상황전개를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3/ 위기관리 컨설턴트들은 여기에서 크게 두 가지의 역할이 가능하다.
첫째, 갑작스럽게 전혀 관계가 없던(따라서, 조직 내부의 상황에 대한 지식이 쌓여있지 않은 상황에서) 고객사로부터 위기관리 컨설팅에 대한 의뢰를 받았을 경우, 그리고, 시간이 별로 없을 경우에는 주로, ERD의 측면에서 자문을 하게 된다.
둘째, 평소 CEO나 임원진과 관계를 갖고 있고, 그 조직의 문화나 CEO의 성향 등에 대해 익숙했던 관계에서는 IRD와 ERD를 모두 고려한 자문이 가능하다.
그러나, 더 뛰어난 위기관리 컨설턴트들은 위의 두 가지 상황 모두, 조직 내부의 사람들과 변호사 등의 '다른 외부 자문가'들과 함께 토론을 facilitation 하면서, 이로부터 자연스러운 결론을 이끌어낸다.
여기에서, 뻔한 소리지만, 매우 중요한 것은, 위기관리 컨설턴트는 '이번 사건 관리하기 위해서는 이렇게 해야 한다'라고 답을 주는 사람이 아니라 CEO가 최선의 결정을 스스로 할 수 있도록 위기관리 의사결정 과정에서 그가 고려해야 하는 다양하면서도 중요한 요소들을 짧은 시간안에 생각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여기에서는 답을 주는 기술보다는 질문을 던지는 기술이 중요해지는 것이다. 위기상황에서 적절한 질문을 던지기 위해서는 위기상황에 대한 '교과서적인' 지식만으로는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위기상황이라는 것은 너무나 다양하고, 변수가 많기 때문에, 현실속에서의 경험을 통해, 그러한 변수를 고려한 질문을 던져야 하기 때문이다.
위기관리 컨설팅에서 종종 devil's advocate의 기술이 중요한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예를 들어, 정용민 팀장님이 제시한 '교과서적인 답변'과 '현실적인 답변'을 놓고 이야기해본다면 이렇다. 물론, 고객사들은 '현실적인 답변'에 가까운 이야기를 할 것이다. 이 때, 컨설턴트의 역할은 이렇다. "자, 그렇다면, 보다 좋은 의사결정을 위해 제가 한 번 devil's advocate을 해보지요."하면서 고객사가 '그들만의 현실적인 결정'을 내리기 전에 '또다른 현실적인 상황' (교과서적인 상황과는 많은 경우 다른)을 제시하는 것이다. 이렇게 제시했을 경우 어떤 부분에서는 고객사의 CEO는 자신의 의견이나 결정을 수정하기도 하고, 또 어떤 경우에는 "(또다른 현실이) 그렇다 하더라도, 제 결정대로 가겠습니다"라고 하게된다. 결국, 결정은 고객사가, CEO가 하는 것이다.
4/ 정 팀장님이 올린 상황을 고려해보면, 다음과 같은 의견이 나올 수 있다.
. 정팀장님의 말처럼 컨설턴트가 그저 '정직하라'라고 말하는 것은 교과서적이며, 현실에서 먹히지 않는 것이다. '정직하다'라는 것은 현실 속에서 다양한 형태의 crisis behavior 혹은 crisis response로 나타날 수 있다. '(사람들이 모르는 것까지) 전체적인 진실(whole truth)'을 이야기하는 것과 그냥 '거짓'을 이야기하지 않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때로는 차라리 '침묵'하는 것이 거짓을 이야기하지 않으면서 어쩔 수 없는 경우 '불편한 상황'을 피하는 수단이 되는 경우도 있다.
. 나의 경험으로 놓고 보면, 현실 속에서 위기관리시 지침은 'Be honest'라기보다는 'don't lie'가 더 적절하다. 현실속에서 안할 말까지 다 말하는 정직함을 기대하기란 힘들다. 그러나, 최소한 거짓말을 하는 것은 단기적인 관점에서는 risk가 너무 크며,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훌륭한 결과(sustainable crisis management results)를 얻어내기 힘들기 때문이다. 컨설턴트로서 위기상황에서 고객이 거짓말을 하는 것을 그냥 놔두어서는 안되며, 고객사가 위기상황에서 언론이나 고객에게 거짓을 말하는 것을 중단시킬 수 없을 경우에는 때로는 프로젝트를 접고 나와야 할 때도 있을 수 있다. (아주 현실적이고도 또 때로는 법적인 이유때문에)
. '정직하라(be honest)'가 아주 현실적인 대안이 되는 경우가 있기는 하다. 예를 들어, 지금 침묵하거나 거짓을 이야기한다해도, 불과 며칠 지나서 '상대방' 혹은 stakeholder(언론일수도, 검찰일수도, 고객일수도 있다)가 진실을 알게 될 확률이 높게 된다면 (최소 50%는 넘어야 할 것이고, 80, 90%로 갈 수록 더 '정직할 필요성'은 높아지게 된다), 차라리 먼저 '정직하게' 이야기하는 것이 더 도움을 주는 경우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정직'의 수위를 놓고, 변호사와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 컨설턴트들은 거의 대부분 다른 입장에 서고, 다른 의견을 내 놓는다. 그러나, 그 중간에서 이러한 논의의 양쪽을 고려한 CEO는 더 옳은 판단을 하게 될 수 있다.
. 여기에서 '양쪽'이란 법적인 의미에서의 법정과 여론이라는 의미에서의 법정을 말한다. 당연히 변호사는 전자를, 나같은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 컨설턴트는 후자를 다룬다. 흥미로운 것은 법적인 법정에서는 '피고'(예를 들어 비유하자면 한화)가 죄가 있다는 것을 '상대방'(법정)이 밝힐 때까지 그 피고는 무죄이지만, 여론이라는 법정안에서 '피고'는 자신이 무죄라는 것을 밝힐 때까지 '유죄'로 낙인 찍히게 된다는 점이다.
. 이 두 가지 법정 중에서 어디에다가 더 비중을 두는가는 CEO의 몫이다. 정팀장님이 이야기한 것처럼, 만약 고객사가 '일반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비즈니스'가 별로 없거나 한정적이라 여론이라는 법정은 신경 끄고, 법적인 법정에서의 피해를 최소화하는데에 치중하겠다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결정은 CEO가 하는 것이다.
. '교과서적인 답변'으로 김승연 회장의 기자회견이나 donation등을 예로 들었는데, 이는 '교과서적으로' 생각해봐도 별로 좋은 선택은 아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김승연 회장이나 한화의 홍보팀이 할 일은 대략 다음과 같을 것이다: .. 최소한 (더군다나 탄로날) 거짓은 자제하는 것 .. 교만한 태도나 반응을 보이지 않는 것 .. 경찰서에 출두하면서 언론과 마주하는 과정에서 최대한 겸손하게, 그리고 진심을 담아 사과하는 것 .. '김승연 회장의 인간적인 면모'등과 같은 자료를 자체적으로 뿌리는 일은 자제하는 것 .. 내부의 분위기(IRD)와 마찬가지로 외부의 여론(ERD)에 대해 홍보팀이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고, 이를 의사결정층에 보고하여 보다 바른 결정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 .. 한화의 내부직원들이 이러한 상황에서 고객(B2B고객이든, B2C 고객이든)이나 가족들에게 어떻게 커뮤니케이션할 지에 대해 도와주는 것 .. 한화의 내부직원들이 이 사건과 관련하여 진행상황을 신문을 통해서만 파악하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내부의 authority를 통해서 먼저 듣게 되도록 조치하는 것 (특히 중요한 activity에 대해서는) .. 이런 상황속에서는 지나친 '언론플레이'를 하기보다는 조용히 있는 것이 더 도움이 될 때가 있다.
5/ 위기관리에서는 두 가지의 '의사'가 필요하다. '의사결정'과 '의사소통'. 평소의 홍보활동에서는 CEO나 임원진이 의사결정을 하고, 홍보팀은 의사소통을 담당하게 되지만, 위기상황에서는 종종 CEO나 임원진이 의사결정뿐 아니라 의사소통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물론, 홍보팀의 의사소통 역할 또한 중요한 것은 말할 필요가 없다.
6/ 정팀장님이 지적하듯, Context를 인정하지 않는 전문가란 있을 수 없다. 전문가가 전문가일 수 있는 것은 text만이 아니라 context를 경험을 통해 볼 수 있는 눈을 가졌기 때문일 것이다. 혹은 context를 모르는 상황에서 어떻게 고객으로부터 이를 끄집어 내고, 이것이 의사 결정에 도움이 되도록 만드는 것이 전문가일 것이다.
7/ 결론:
내가 제약회사에서 커뮤니케이션팀장을 하면서 교육 중에 들은 말로 아직까지도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 Resource가 제대로 갖추어져 있어도 Relationship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으면, 바람직한 Results가 나올 수 없다는 것이다. 이 말은 다양한 상황에서 아주 적절한 '마인드세트'를 제공한다.
한화와 같은 상황에서도 inhouse나 외부 전문가의 resource quality도 문제이겠지만, 이들이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IRD와 ERD를 '그들 사이에서만이라도' 솔직하게 논의를 하고, 이로부터 의사결정과 의사소통이 될 때(relationship), 가장 바람직한 위기관리 결과(results)가 나올 것이다.
많은 경우, 위기관리 컨설팅에서 나의 역할은 고객이 생각하지 못하거나, 혹은 생각하기 싫어하는 worst case를 제시하고, 함께 머리 맞대고 토론하는 devil's advocate이 되는 것이다.
그로부터 나온 결정이나 메시지를 가지고 기자와 이야기하는 것? 도저히 외부의 PR AE나 컨설턴트라는 사람들이 대부분 평소부터 관계가 쌓여있는 in-house 홍보팀 여러분들보다 더 잘하기 힘들다. Relationship이 이미 쌓여있기 때문이다. (물론, in-house 홍보팀이 그런 관계가 없을 때는, 그런 '필요한' 관계를 어디에서 찾아내거나, 시간이 없을 경우에는 맨땅에 헤딩할 수 밖에 없다)
결국 인하우스와 컨설턴트들의 '이슈들의 충돌'이 충돌로 끝나면, 별볼일 없어진다. 하지만, 충돌의 과정을 지나(다른말로 표현하면, IRD와 ERD가 모두 고려되는 토론을 지나) 합의가 이루어지게 될 때, 그리고, 그 합의가 행위(crisis behavior)로 나타날 때, 더 좋은 위기관리 결과를 가져올 가능성은 훨씬 높아진다.
Tracked from Interactive Dialogue and PR 2.0 - Relations & Communications삭제
가끔은 냉소적이고, 가끔은 유희적이고, 가끔은 현실적이고, 가끔은 교과서적인 우마미님이 한화 이슈에 대한 독특한 글을 포스팅 했습니다. 고객사의 이슈관리 관련 여러가지 이야기를 하고 나면, 고객사에선 저에게 그런 말을 합니다. "그런 교과서적인 내용 말고, 다른 솔루션 없습니까?" 현실적인 상황을 반영하지 못했다는 지적이지요.하단 링크된 글은 PR실무하시는 분들이 공감하실 수 있는 부분도 있을 듯 하여 포스팅합니다.한화 위기 관련 이슈들의 충돌이슈관..
예전, 홍사모 사이트를 통해 서로 의견 나누던 생각이 납니다. 어느새 세월은 또 이렇게 흐르네요. 블로그를 통해, 서로 다른 환경에서 같은 PR일을 하면서, 경험을 나누고, 의견을 나누며, 또 다시 초심을 다져봅니다. 앞으로도 서로 의견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종종 있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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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CMR = f (IRD, ERD)의 개념이 참으로 맘에 듭니다. 이에 대한 의사결정 프로세스도 인상적입니다. 여러가지 생각하지 못했던 측면에 대한 지적 또한 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좀 더 공부해야 겠다습니다. ^^;
2007/05/06 20:59예전, 홍사모 사이트를 통해 서로 의견 나누던 생각이 납니다. 어느새 세월은 또 이렇게 흐르네요. 블로그를 통해, 서로 다른 환경에서 같은 PR일을 하면서, 경험을 나누고, 의견을 나누며, 또 다시 초심을 다져봅니다. 앞으로도 서로 의견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종종 있기를 바라며.
2007/05/06 23:30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2008/09/01 15: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