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는 시계를 몇 개 가지고 있다. 가장 싼 것이 7만 5천원에서 가장 비싼 것이 19만5천원인 것으로 기억한다. 보통 시계를 사면 10만원 내외짜리를 산다.
그러나, 사진에 보는 시계는 내 평생 가질 최고의 럭셔리한 시계가 될 것 같다.
올해 초, 부모님댁에 갔다가, 아버지께서 20년 넘게 차시던 시계가 서랍 구석에 처박혀 있는 것을 우연히 발견했다. 아버지께서는 언제부터인가 도무지 시계가 말을 듣지 않아, 더 이상 쓰지 않는다고 하셨다. "제가 수리해서 써도 되요?" 아버지는 흔쾌히 그러라고 하셨다. 아버지께서 현재 많이 차고 다니시는 시계는 바로 내가 가지고 있던 19만 5천원짜리 시계다.
우선, 내가 몇 번 가본 적 있는 시계방의 전문가에게 물어보았다. 도대체, 이 시계는 무엇이 문제이고, 수리비는 얼마나 나올지. 그는 시계를 뜯어보더니, 갈아야 할 부품이 많고, 만약, 이 시계 메이커에 가져가면 훨씬 비싸게 나올 것이나, 자기가 싸게 해도 15만원은 수리비가 나올 것이라 했다. 우선, 고맙다고 이야기하고 가져왔다.
큰 마음 먹고, 이 시계를 만든 Longines의 한국지사에 지난 2월 수리를 맡겼다. 한 2주쯤 지났을 때, 론진측에서, 분해청소뿐 아니라, 전체적으로 모두 수리를 해야 하고, 심지어 시계판까지 갈아야 할텐데, 시계가 너무 구식이고, 더 이상 나오지 않는 모델이라, 일단 스위스 본사로 보내야 할텐데, 괜찮겠느냐고 물어왔다.
난 몇 가지 단서를 달고 동의했다. 시간과 돈이 얼마가 들어도 좋으니, 원래 모양 그대로의 상태로 최대한 살리는 방향에서 수리를 해 달라고, 시계판을 만약 예전 모델 모양 그대로가 아니라, 새것으로 바꾸면 의미가 없다고. 한 달에서 두 달 정도 걸릴 것이라던 약속은, 스위스 본사에서도 예전 부품을 구하기가 쉽지 않아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연락이 두 번은 더 왔다. 그리고, 마침내, 수리를 맡긴지 5개월만에 찾았다. 수리비는 정확히 41만 2천 3백원. 내가 보통 차는 시계 3-4개는 거뜬히 살 돈을 수리비에 쏟아 부었다.
2. 신세계 본점이 리모델링 한다고 했을 때, 나는 그 건물을 부시고 새로 짓지 않기를 간절히 바랬다. 다행히, 예전 모습을 간직한 상태에서 내부 수리에 치중한 것을 고맙게 생각한다.
김영삼 정부 시절 중앙청을 광화문에서 들어낼 때, 난 마음속으로 잘했다고 생각했다. 지금 와서 아쉬운 것은, 우리 수도의 심장부, 궁터를 가로 막고 있는 중앙청을 들어내는 것은 잘 했지만, 그것을 근교 어디로 옮겨서 그대로 복원해 놓고, 비록 아픈 역사이지만, 그 건물을 통해 우리의 역사를 보여주고, 또, 이를 옮긴 이유와, 그 과정의 스토리들을 기록하여 후세에 보여주었으면 좋지 않았을까 싶다.
얼마전 광화문 근처에 있는 두가헌이라는 곳에 가서, 주인에게 그 건물에 대한 설명을 들을 기회가 있었다. 100년이 넘은 건축물을 그대로 살려서 내부를 와인바로 개조한 것이었다. 인사동에 있는 민가다헌 역시 두가헌과 비슷한 이유에서 내가 좋아하는 곳이다.
"초가집도 없애고, 마을길도 넓히고..."라고 했던 새마을 운동 탓일까? 근대화, 현대화가 우리 예전 모습을 모두 없애는 것은 아닐텐데. 몇 개의 궁을 빼 놓고는, 특히 서울에서는, 몇 년만 지나도, 그 자리에 있던 것들을 볼 수 없는 경우가 많다.
교보문고가 내게 정겨운 것은 20년이 넘은 옛날, 중고등학교 시절, 방학이면 친구와 찾아가던 곳이, 아직도 그 자리에 그대로 있기 때문이다. 종로서적이 없어진 것은 서글프다.
며칠 전 MBC-TV에서도 "헐리는 문화유산"이라는 내용의 뉴스가 나왔지만, 기자의 말처럼 "아직 문화유산이라고 하면 별로 활용가치가 없다, 또는 짐만 될 뿐이다라는 인식"이 우리사회에 퍼져있는지도 모른다.
이번에 Nova Scotia에 갔을 때도 마찬가지이고, 유럽에 가면, 어느 예술가가 자주 들리던 술집, 그리고 그 테이블, 어느 작가가 글을 쓰던 방, 그리고, 정치적인 큰 사건이 있었던 자리들을 보존하고, 그 스토리가 깃들인 곳으로 수많은 관광객들이 찾는다.
위에 보이는 시계를 만든 Longines란 회사도 1832년에 창업하여, 175년째 시계를 만들고 있다.
3. 지난 번 롤프옌센의 기조 연설을 들을 때, 그는 Dream Society와 경험경제 속에서 '관광산업'에 주목했었다. 앞으로는 더욱 더, 어디를 가도 비슷한 건물에, 비슷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하이야트나 쉐라톤같은 큰 체인의 호텔보다는, 규모는 작아도 그 지역의 특성을 살린 부티크 호텔(boutique hotel)이 성장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관광상품으로서 도시의 경쟁력은 '그곳에 가야만 볼 수 있는' 것이 있고, 그리고, 도시 곳곳에 스토리가 넘쳐나는 것인데, 서울에는 우리의 스토리를 품고 있는 곳들이 대부분 사라져가는 것이 안타깝다. 경복궁만이 관광 상품이 아니라, 오래된 술집, 오래된 식당, 사연이 있는 오래된 건물...들이 모두 우리의 소중한 재산이기 때문이다. 그나마, 서울역이 보존된다는 것이 반갑다.
4. 언젠가 영화에서 맥 라이언이 결혼을 앞두고, 집안 창고에 어머니가 보관해오던, 할머니가 입었던 웨딩 드레스를 입는 장면이 있었다. 결혼식을 위해서이다. 자신이 진정 사랑하는 사람에게 자기 할머니가 쓰던 반지를 주는 영화의 한 장면도 내게는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아있다.
5. 이번 주, 비싼 돈을 지불하긴 했지만, 20년 전 모습을 유지하면서, 새롭게 고친 시계를 찾아 오면서 마음은 뿌듯했다. 아버지께서 젊었을 때, 20년 동안 팔목에서 시간을 알려주던 시계를 이제 내가 수십년 찰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가격(price)으로 치면, 이 보다 비싼 시계야 얼마든지 있겠지만, 내게 주는 가치(value to my life)로 치면, 평생 가질 수 있는 최고의 럭셔리한 시계는 바로 이것이다.
엉뚱하게 그런 생각을 했다. 몸매가 늘씬하고, 얼굴이 예쁜 여자가, 번쩍 거리는 새반지가 아니라, 때묻은 자기 반지를 내게 보여주며, 아주 오래 전, 자신의 할아버지가 할머니께 프로포즈할 때 주었던 것이라고 이야기해주면, 그것보다 더 섹시한 모습은 없을 것이라고:)
* 왼쪽 사진은 내 평생 아마도 가장 럭셔리한 옷이 아닐까 싶다. 거의 20년 전, 어머니가 겨울에 입으라고 짜준 스웨터. 아직도 겨울이면, 가끔씩 입고 거리를 나선다.
2007/07/15 03:47
2007/07/15 03:47















댓글을 달아 주세요
론진...사실 우리나라 60년대 혼인시계로 인기를 끌던 것들은 보통 유명 일제시계들이랑 오메가류의 중급 브랜드들이 대세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70년대들어 오면서 홍콩등지에서 대거 입수된 (가짜) 롤렉스들이 인기를 끌기 시작했고...80년대 론진같은 경우는 참 시계 본연(?)에 충실한 고급시계인데 국내에서는 그 인기를 그렇게 끌지 못했었지요. 론진의 경우에는 상당히 얇은 본체를 가졌으면서도 오토매틱(차고 다니면 자동으로 테엽이 감기는)이라 상당한 기술력을 자랑하는 '좋은' 시계입니다. 아버님이 소장하셨던 것이라 더 큰 의미가 있다는 말에 너무 공감이 갑니다. 저도 어제가 아버님 생신이셨는데...다음에 아버님댁에 가면 저도 아버님 '론진' 시계를 한번 가져와 호선배 같이 고쳐 차볼까 합니다. 론진...아버지의 시계...그리고...가치라는 데서 넘 공감이 가서 이 글이 고맙습니다. 역시 호선배...
2007/07/15 11:47이 글 쓰면서, 안 그래도 시계에 대한 관심이 남 달랐던 정팀장님 생각이 났습니다. 맞습니다. 이 시계도 차고 다니면 자동으로 태엽이 감기기는 하는데, 날짜를 돌리려면, 시침을 두 바퀴를 돌려야 겨우 하루가 옮겨져서, 날짜 한 번 고치려면, 시간이 많이 걸리는게 흠입니다
제가 보기에도 론진은 우리나라에서 별로 인기있는 브랜드는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은 스와치와 한 계통의 회사가 되었더군요.
2007/07/15 12:25호 형님 블로그는 참 재미있습니다. 일상의 소소한 일을 맛깔나게 표현을 하니 "아~~ 나도 그런게 있는데.."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뭐랄까? 가벼운 이야기를 결코 가볍지 않게 하는 재주가 있는 것 같고 그렇다고 무거운 이야기를 너무 무겁게만도 전달해 주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2007/07/17 15:09가끔은 제 개인적인 명분에 부합하지 않는 글도 몇 개 있습니다.ㅋㅋ (그렇다고 악플러는 아닙니다..ㅋ 아시잖아여..저의 순수함..항~)
형님으로 인해 또 하나의 즐거움이 생겼습니다..
(도형형,현수형..너무 너무 좋아여..~~)
호 형님을 다시 뵐 수 있겠죠~~ 그날이 빨리 오기를~~~~
이권. 칭찬과 순수한 피드백. 감사드려요. 그럼요. 이권의 뜻과 다른 것이 당연히 있겠지요. 중요한 것은 서로의 차이(difference)를 발견하고, 이를 생각하고, 대화하면서, 우리는 배우는 것(learning) 같습니다. 저도 곧, 이권의 블로그에서 공통점과 차이점을 발견하길 기대할께요. 이권 화이팅!
2007/07/17 17:21